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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내가 가질게 (안보윤 소설)
밤은 내가 가질게 (안보윤 소설)
저자 : 안보윤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년 : 2023
ISBN : 9788954696456

책소개

어둠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빛을 표현하는 작가
안보윤 단편소설의 정수

더 조용한 속도로, 더 조심스러운 각도로
감춰진 마음의 겹을 들추는 섬세한 손길

상처 입은 이들의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가혹한 진실을 들여다보며 아픔을 어루만지고 회복의 길을 열어온 작가 안보윤의 세번째 소설집 『밤은 내가 가질게』가 출간되었다. 『소년7의 고백』 이후 오 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에는 2023년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애도의 방식」을 비롯해 현대문학상 수상작 「어떤 진심」, 김승옥문학상 수상작 「완전한 사과」가 수록되었다.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표상하고 인물의 심리를 파고들며 그 솜씨를 인정받았던 안보윤은 최근 완성도 높은 서사, 인물의 입체적 면모를 드러내는 촘촘한 묘사, 익숙한 흐름을 답습하지 않는 시선으로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아왔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에서 안보윤은 일상이 파괴될 만큼 커다란 고통을 겪은 이들이 어떻게 다음 삶으로 이행해가는지 그 행로를 좇는다. 사이비종교 집단에 더이상 소속감을 느끼지 않음에도 남아 있기를 택한 신도(「어떤 진심」), 범죄자인 오빠 때문에 직장을 잃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여동생(「완전한 사과」), 돌봄방 아이들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엄마를 위해 정작 자신이 받은 학대를 묻어두고 대신 합의를 진행해야 하는 딸(「미도」) 등, 안보윤의 인물들은 모두 막다른 길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가늠하며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신을 옥죄던, 동시에 자신의 전부였던 세상을 잃은 그들은 과연 현실에 맞설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안보윤은 선과 악으로 이분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사정을 끈질기게 따라가며 그들이 말하거나 말하지 않은, 차마 말하지 못한 진심을 소설적 현실에 담아낸다.

어떤 진심은 꿈을 짓밟고 어떤 진심은 모멸감을 준다. 어떤 진심은 효용을 감지한 후에야 위로의 말을 건넨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하는 마음도 진심이고 속이는 마음도 진심이라면, 그때의 진심이란 얼마나 섬뜩하고 무서운가. 무엇보다 누군가를 외면할 때의 진심과 이후 그 순간이 야기한 죄책감을 되새기는 마음은 얼마나 가까운가. 안보윤은 이처럼 여러 겹의 진심으로 다양한 마음의 결과 행방을 되새기며 진심의 쓸모를 캐묻는다. 좋은 소설은 인간의 얼굴을 사면상처럼 묘사하기 마련이다. 각도에 따라 한 사람의 안색이 달라 보이게 마련인데, 안보윤이 「어떤 진심」에서 그려낸 인물의 얼굴이 그러했다. _편혜영(소설가), 현대문학상 심사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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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세상은 공평해. 네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표제작 「밤은 내가 가질게」는 매서운 현실에 맞서 더 냉담해지기로 결심한 인물이 진정한 사랑과 공감의 형태를 알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학대 피해 아동 주승이를 담당하게 된 어린이집 선생님 ‘나’는 주승이가 등원할 때 한 번, 하원할 때 한 번 아이의 옷을 벗겨 상처가 없음을 보호자에게 확인시킨다. 불필요한 누명을 쓰지 않으려 행하는 이 방어기제는 그동안 폭력에 가까운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을 상대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5세 반 점심 반찬으로 시금치가 나왔었거든. 다음날 애 아빠가 들이닥쳐서는 자기 딸한테 시금치를 먹였다고 멱살을 잡더라고. 그걸 먹고 애가 체해서 응급실에 다녀왔다나. 무릎 꿇고 빌라고 난동을 피우다가 난데없이 시금치 한 통을 꺼내는 거야. 시금치가 그렇게 몸에 좋으면 니가 다 먹으라고, 자기가 보는 앞에서 당장 다 먹으라고.
먹었어요?
먹었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궁금해. 애가 아팠다면서 그 이른 시간에 시금치 무쳐 올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다른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일념으로 어떻게 그렇게까지 부지런해질 수 있었을까.(238~239쪽)

이 세상은 공평해. 네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네가 만만하고 짓밟기 좋은 선인이 되면 저쪽은 자기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안다고.(231쪽)

‘나’에게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인 사고뭉치 언니가 있다. 언니가 이번에는 사이비 명상 집단의 꼬임에 넘어가 전세금을 날리는 바람에, ‘나’는 그녀와 동거하는 처지가 된다. 언니는 ‘나’의 연인 이선과 친해져 함께 유기견 봉사를 다니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것이 탐탁지 않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언니가 약한 존재에게 측은지심을 갖는 동안, 자신은 필사적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설상가상으로 언니는 나이들고 병든 유기견을 입양하겠다고 선언하고,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불편한 속마음을 말했다가 이선과도 갈등한다.
그러나 뜻밖의 사건으로 ‘나’는 자기 안의 상냥함을 발견한다. 등원한 주승이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아이의 몸에서 오랜 학대의 흔적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경찰에 신고한다. 사라지고 없다고 생각했던 돌봄과 배려가 냉정을 뚫고 나오자, ‘나’는 언니와 이선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이 자신을 섬세하게 감싸안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깨닫는다. 유기견을 집으로 데려오던 날, 언니가 개의 목에서 팬던트를 떼어내면서 속삭인 “밤은 내가 가질게”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개의 이름이 ‘밤톨이’에서 ‘토리’가 된다는 말일뿐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의 어둠을 흡수하여 다정함으로 빛나는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언니가 개 목에 걸려 있는 은색 펜던트에 손을 댔다. 밤톨이라는 이름이 적힌, 혹시라도 주인이 찾아올까봐 계속 걸어두고 있었다던 그것이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펜던트가 떨어져나갔다.
밤은 내가 가질게.
언니가 개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늙고 새까맣고 병든 개의 이름은 토리가 되었다.(251쪽)


“엄마가 죗값을 다 받았으면 좋겠어. 지은 죄만큼 정확히.”

「밤은 내가 가질게」의 이야기는 수록작 「미도」 「완전한 사과」와 연결되며 자매의 비극을 기어코 드러내고 만다. 돌봄방 아이들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엄마를 위해, 그들은 피해자 가족에게 합의를 간청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을 미도는 누구보다 상세하게 알고 있다. 미도 또한 엄마에게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학대를 당해왔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존재인 것처럼 미도를 세뇌시켰다.
갈등하는 미도에게 동생의 말은 용기를 준다. “학대는 그냥 학대야. 거기엔 어떤 이유도 붙으면 안 돼.” 미도는 동생에게 오랜 학대의 고통을 고백하고,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드디어 이야기하게 된다. “엄마가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어. 지은 죄만큼 정확히.”
그러나 깊게 팬 상처는 흉터로 남아 끈질기게 그녀를 따라다닌다. 「완전한 사과」에서 주인공 ‘나’의 오빠가 폭력을 휘두른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아내 미도다. 그 일로 미도는 자신의 다리를, 아기를, 그리고 반려견 토리를 잃는다. 상황은 이제 더 나빠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가 간절히 그녀의 행복을 바라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까지 그녀를 지키고자 애썼을 토리를, 그리고 미도를 사랑으로 감싸고 응원해온 동생과 이선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완전한 사과」의 주인공 ‘나’는 오빠가 가정 폭력범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방과후 교사 일자리를 잃는다. 억울할 법한 상황을 ‘나’는 그저 받아들이는데, 그 체념 뒤에는 오빠의 폭력의 역사가 있다. 오빠에게 맞아 깁스를 했을 때도, 동생 도윤의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도 ‘나’는 어떤 제재도 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이라도 오빠에게 대항했다면, 그랬다면 지금의 극단적인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가 가해자 가족을 향하는 부당한 시선에 대한 최소한의 항변조차 포기한 것에는 그러한 죄책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초등학생 동주가 동급생 승규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목격했을 때 동주의 하소연을 떠올렸을 것이다. “왜 안 되는데요? 승규 정강이 까는 거, 그거 딱 한 번이면 되는데, (……) 그것도 안 되면. 그럼 난 뭘 해요?” ‘나’는 손을 뻗어 거칠게 승규를 제지한다. 지난날 자신을, 가족을, 한 여자와 동물을 지켜내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속죄라도 하듯이.
지금도 어디에선가 가해자의 가족들은 ‘나’처럼 뜻밖의 수모를 당하고 내적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읽는 이는 어느 것도 그들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순진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다. 안보윤은 단편적인 윤리의식으로는 정의 내릴 수 없는 가해와 피해의 굴레를 내부자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가능과 불가능, 책임과 회피의 모호한 경계를 오고가며 죄책을 되새김질하는 이들은 언제 정당해질 수 있는지, 과연 우리에게 그들의 결백을 승인할 자격이 있는지 작가는 묻는 듯하다.

그러나 가장 억울한 건 이런 것이었다. 나는 왜 양껏 오빠를 증오할 수 없나. 저주의 끝에는 왜 늘 습관처럼 죄책감이 들러붙나. 나는 거리낌없이 오빠를 찢어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그들처럼 다만 새까만 사람이 되어 정의로운 악담만을 내뱉고 싶다. 살인자를 욕하는 데 어떤 책임감도 느끼고 싶지 않다.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오빠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오빠가 아닌, 오빠가 훼손한 것들에 대한 생각이다. 어떤 진심도 가닿을 수 없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생각이다.
_「완전한 사과」, 62쪽


“알 리가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

「어떤 진심」과 「미워하는 일」, 「애도의 방식」과 「바늘 끝에 몇 명의 천사가」는 폭력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인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리는 상반된 결정을 그린다. 「어떤 진심」의 유란은 사이비종교 목사와 바람이 난 엄마를 따라 교회로 거처를 옮겼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세뇌당한 유란은 절친한 친구 민주가 구원받길 바라는 마음에 교회로 그녀를 끌어들이지만, 자라는 동안 교회의 실체를 알아채고 믿음을 그만둔다. 그러나 민주는 어느새 교회의 핵심 전력이 되어 믿음을 볼모로 시간과 돈을 착취당하고 있다. 유란은 믿음 없는 마음으로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내 신자로 포섭한다. 언젠가 교회가 충분히 커지고 신도가 늘어나면 민주를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매일을 견디는 것,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외에 어떤 일상이 있는지 유란은 알지 못했다. 유란은 소란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심호흡을 했다. 그럼에도 아직 지우지 못한 문장이 하나 남아 입속을 맴돌았다. 이젠 누구도 진심이 아닌 곳에 왜 열매들만이, 오직 열매들만이 진심인 채로 남아 있을까. _「어떤 진심」, 38쪽.

「미워하는 일」의 주영은 하굣길에 동급생이 한 남자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부모에게 정신적 충격을 토로하지만 애정어린 관심을 받지 못한다. 엄마 친구의 딸인 세연이 같은 날 화상을 입어 돌봄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 친구는 사이비종교에 빠져 세연을 방임해왔는데, 주영에게 그것은 세연의 사정일 뿐으로 여겨진다. 마땅히 받아야 할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주영은 자신을 따르던 세연에게 무자비한 말을 내뱉고, 세연은 집을 나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성인이 된 주영은 사라진 후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세연과 하굣길에 벌어진 폭행으로 후유증을 앓게 되었던 어릴 적 동급생을 떠올리며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다”고 회상한다. 두 사건의 발단에 자신의 치기어린 귀책이 있음을, 주영은 끝끝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뭐?
내가 다그치듯 세연에게 물었다.
-교회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널 때렸어?
-아니.
-너한테 욕을 했어? 그 사람들이 널 함부로 만졌어?
-……아니.
-그럼 아무것도 아니네.
세연이 놀란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세연의 주근깨투성이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얼굴이 둥글어졌어도 푸석푸석하던 머리칼이 보드라워졌어도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도 여전히 엉망으로 찍혀 있는 주근깨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거잖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유난 떨지 마.(164~165쪽)

「애도의 방식」은 가해자의 죽음을 목격한 학교 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에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스무 살 동주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고향을 떠나는 대신 버스터미널 안 찻집에 일자리를 구한다. 동주가 미래를 구체적으로 꿈꾸지 않으면서 무감히 현재를 살아가게 된 것은 과거의 지독한 악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주는 동급생 승규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조용히 지내다보면 가해자의 관심이 다른 아이에게로 향하리라는 엄마의 기대 때문에, 동주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반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기나긴 폭력의 시간을 견딘다. 그러던 어느 날, 폐건물 옥상에서 동주를 괴롭히던 승규는 옥상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는다. 승규의 엄마는 죽음의 진실을 알고자 오랜 시간 동주를 따라다녔지만, 동주는 강요된 침묵을 지켜왔다.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복어처럼 몸을 부풀린 엄마가 소리쳤다.
우리 애한텐 아무 일도 없었어요. 남자애들끼리 좀 치고받고 놀 수도 있죠. 괴롭힘을 당했다니, 대체 누가요?
(……)
소문 속에서 나는 승규의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승규를 등뒤에서 힘껏 떼밀기도 했다. 학교 복도나 급식실에서 했다면 대수롭지 않을 행동들이었으나 난간이 없는 옥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만큼 당했으니 동주 걔도 한 번쯤은. 암만 억울해도 인간이 어떻게 그러냐. 누군가는 동조하고 누군가는 비난했다. 매일매일이 소란했다.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었다.(91~92쪽)

수년 만에 찻집으로 찾아온 그녀는 동주에게 사과를 건넨다. 죽음의 이유를 묻지 않겠다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 말하고 돌아서는 그녀에게 동주는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번 침묵은 엄마의 강요가 아닌 동주의 선택이다. 승규가 아닌 그녀를 위해, 동주는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두르던 승규의 마지막 표정을 말하지 않는다.

「바늘 끝에 몇 명의 천사가」의 하진은 학과 조교에게 스토킹을 당해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경찰도, 엄마도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말한다. “딱 한 번”뿐이었다는 가해자의 말에서, 하진은 자신의 목을 졸랐던 엄마가 “딱 한 번” 저지른 일이지 않으냐며 용서를 구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곤경에 처한 하진에게 힘을 주는 건 중학교 동창이자 이웃인 유영이다. 유영은 아빠의 가정 폭력에 오래 시달렸고, 폭력에서 벗어난 뒤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민다.

-나는 저 소리가 뭔지 알아. 저게 뭘 의미하는 건지, 나는
알아.
유영이 말했다. 하진이 유영의 팔을 끌어안듯 붙잡고 주저앉는 바람에 유영이 휘청거렸다. 하진이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 위에서는 너무 많은 것이 부서졌고 더 많은 것이 깨졌다. 사물은 쓸모없어졌을 것이고 공간은 결코 안전할 리 없으며 그 안의 누군가는, 그 안의 누군가는. 가지 마. 하진은 그렇게 말했다. 스스로의 비겁함에 몸을 떨면서도 유영을 붙잡았다.
-나는 그때, 매일매일 기다렸어.
유영이 하진을 조심스레 떼어내며 말했다.
-누가 나를 도와주기를, 누가 딱 반 뼘만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봐주기를. 비명을 지르면 더 많이 맞으니까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매일 생각했어. 제발 누구라도, 아주 잠깐만이라 도 나를 숨겨달라고.(137~138쪽)

「어떤 진심」의 유란과 「미워하는 일」의 주영은 자신에게 가해지던 폭력을 교묘히 이용하고 답습하여 또다른 폭력을 굴레를 낳는다. 반면 「애도의 방식」의 동주와 「바늘 끝에 몇 명의 천사가」의 유영은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겪고 있는 타인을 위해 작은 선의를 베푼다. 안보윤은 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는 익숙한 방식이 아닌 다른 여러 갈래의 삶의 방식을 열어둠으로써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어둠에 잠식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성숙하게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 상처 입은 이를 보듬고 회복의 길을 예언하는 안보윤의 다정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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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어떤 진심 … 007
완전한 사과 … 039
애도의 방식 … 073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 103
미워하는 일 … 139
미도 … 173
밤은 내가 가질게 … 211

해설 | 정여울(작가, 문학평론가) 당신의 마지막 안전지대는 어디입니까-트라우마 이후, 상처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문학의 힘 … 253

작가의 말 …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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