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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주 연구
장혁주 연구
저자 : 시라카와 유타카
출판사 : 동국대학교출판부
출판년 : 2010
ISBN : 9788978012614

책소개

『장혁주 연구』. 조선인이면서 일본어가 더 편했다는 소설가 장혁주.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친일작가’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그는 일본어로 쓴 소설로 등단했으며, 일본에서 일본어로 조선의 현실을 그리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 책의 저자 시라카와 유타카는 일본의 한 연구자의 눈에 비친 한국 작가의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조선에서는 친일작가!
일본에서는 반도작가!

식민지 작가의 정체성을 해부한다.

조선인이면서 일본어가 더 편했다는 소설가 장혁주.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친일작가’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그는 일본어로 쓴 소설로 등단했으며, 일본에서 일본어로 조선의 현실을 그리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가 광복 이전에 발표한 소설은 자그마치 장편 16편, 중.단편 60여 편에 이르고 장편소설, 창작집, 수필집 등 단행본만도 30여 권이다. 이는 그가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소설가 가운데 한 명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그의 문단활동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등단 초기부터 조선에서는 ‘친일작가’로, 일본에서는 ‘반도작가’로 불리며 그의 문학은 차별 당했고 점차 문학적 동력도 잃어갔다.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과 문학으로 입신양명코자 했던 작가적 욕망은 시시때때로 상충되었으며 그 틈에서 작가는 짙은 번뇌와 갈등에 시달려야만 했다.

압도적인 작품활동에도 불구, 우리는 그를 반 세기 넘게 외면했다.
장혁주는 한국의 발자크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되고자 했던 소설가였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성을 갖춰야 했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구하고 실험했으며 압도적으로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의 친일 이력은 이 모든 것을 가려 버렸다.
이 책의 저자인 시라카와 유타카(조선근대문학 전공, 규슈산업대 국제문화학부 교수)는 한국에서 국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일본인이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친일작가’를 다루는 데 있어 누구보다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집필 의도는 장혁주가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었고 어떻게 변모하였는지에 대하여 객관적이고도 공평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고자 한 데 있다. 그는 장혁주를 반민족 작가라며 비판하지도 않고 소설가라면 작품으로만 평가해야 한다며 옹호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당시 한국과 일본이 장혁주에게 보인 반응을 서술함에 있어서도 냉온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저자가 인지한 장혁주는 ‘친일작가’가 아니라 식민지라는 특수한 환경에 놓여 있었던 한 명의 소설가였을 뿐이다. 그는 장혁주가 한국문학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장혁주는 끊임없는 활동으로 다른 문인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일제에 저항했다고 평가받는 김사량에 비하면 일제와의 대결 자세가 약한‘친일작가’장혁주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지 못했다. 따라서 최근까지 한국, 일본을 막론하고 장혁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15년 간에 걸쳐 왕성히 활동한, 일본어 작가의 제일인자격인 장혁주의 존재를 문학사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소박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하여 불분명한 점이 많은 장혁주와 그의 작품 전체를 해명하고자, 우선 연보와 작품 서지적 사항에 대해 총정리를 하기로 했다. 이것이 본고가 가지는 또 하나의 목적이다.(18쪽)

일본어가 더 익숙했던 조선작가
장혁주도 물론이거니와 일제 강점기 때 활동했던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우리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열패감을 엿볼 수 있다. 그 열패감의 근원과 그것이 발산된 방향을 추적하다보면 그들의 삶과 문학을 둘러싸고 있던 전인미답의 세계를 탐험하게 된다. 거기에는 일본이 조선 작가를 국책 홍보에 활용한 메커니즘이 있고, 문단 내 친일과 항일을 둘러싼 반목이 있으며, 문학적 성취와 좌절 그리고 혼란을 맛본 작가 개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장혁주는 을사조약이 조인되던 해인 1905년에 태어나 1913년에 경주의 계림보통학교에 입학했고 3.1운동이 있던 1919년에 졸업했다. 이후 대구고등보통학교와 대구고보를 거친 뒤 무정부주의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진우연맹’에서 활동하다가 연맹이 해산되자 사립학교의 교원으로 있으면서 습작을 하곤 했다. 그리고 1932년 봄, 드디어 일본어로 쓴 소설 『아귀도』로 『카이죠改造』 현상공모에 비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당선(2등)되어 소설가로 인정받는다. 이 일로 그는 한국과 일본 양국 문단에서 화제의 중심에 서며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게 된다. 이후 그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통해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런데 그는 한국인이면서 왜 하필이면 일본어로 등단작을 썼을까? 혹시 소설가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친일의 길을 걷기로 작심했던 건 아닐까? 그러나 저자가 인용한 장혁주의 발언을 보면 그는 그저 순진한 문학청년에 불과했다.

어떻게 하면 문단에 나갈 수 있을가? (……) 그래서 현상懸賞을 택한 것이 26세 때. 그 봄에 세리자와芹澤씨의 『부르조아』ブルジョア를 보고 나도 당선된다는 좀 과장된 자신을 가졌다. 곧 희곡을 『카이죠』改造에 보냈는데 낙선되었다. 나는 실망을 느끼는 동시에 일종 분한 기분이 되어 『아귀도』餓鬼道를 세 번 고쳐썼다. 그것이 당선되었을 때는 정말로 꿈같은 이야기로 (……)
- 장혁주 『현상소설의 추억』 중에서(118쪽)

그러나 저자는 장혁주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그는 비록 장혁주가 어릴 때부터 일본어 교육을 받으며 자라긴 했으나 한국어로도 얼마든지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논증한 다음, 한국인이 일본어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제시한다.

한국인이 일본어로 창작을 한다는 것은 일본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로 쓴 경우와는 다른 문제성이 개재되어 있다. 즉 장혁주가 창작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하에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본어가 ‘국어’로 강제되었기 때문에 모어母語와 ‘모국어母國語’가 일치하지 않았고 일본어는 그 당시 한국인에게는 단순한 외국어 이상의 무게가 있었던 것이다. (15쪽)

한국의 도스토예프스키가 되고자 했던 소설가, 그러나……
장혁주의 당선작 『아귀도』는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지만 한편에서는 ‘보고서’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자세히 소개하는 데만 주력한 인상이 깊었다는 뜻이다. 장혁주의 작업은 종종 이러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적 소재는 고갈되어가고 새로운 시도는 빗나가기 일쑤였다. 한계에 부딪친 그는 조급해진다. 진정성과 미적 탐구가 결여된 작품들은 쓰는 족족 조롱 섞인 평을 받고 결국 발자크를 뛰어넘어 도스토예프스키에 도달하겠다던 기개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는 데 쓰이고 만다. 그는 자기 작품의 질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자신이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은 아니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조선사람 속에 묻혀 조선의 고민을 고민하면서 창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경에 있어도 조선을 잊어버려 조선의 고민이 없어질 리 없지만, 적응성이 많은 나는 어느 정도 그것들이 약해질 것을 예감했다. 나는 (……) 단연코 돌아가기로 했다. (……) 이래서 지금 나는 문단권외에 있다. 문단 외에서 문단과 교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되도록 적극적으로 자신을 몰지만, 때로 가정적, 민족적, 그리고 사회적인 이중, 삼중의 괴로움에 사로잡혀 우울해지곤 한다.- 장혁주 (125쪽)

내가「아귀도」나「쫓기는 사람들」로 지방청년들에게 절대한 반향을 일으켰는데 반해, 조선의 많은 작가들은 단순한 소개문, 보고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멸한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말한 듯이 그들이 나를 질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혁주 (168쪽)

나는 문단인들 (……)에게서 조선인 작가니까라든가 핸디캡이라든가 무르다라든가 그러한 참으로 지겨운 소리를 듣기 싫어, 1934년도에는 피투성이가 되면서 싸웠는데도 (……)- 장혁주(132쪽)

서울의 제군은 예기치도 않게 일제공격을 각본에 돌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 공격은 아무런 과학적 비판이 아니라, 오로지 나쁘다, 좋지 못하다는 말일뿐, 무엇 때문에 나쁘다라든가 거기는 이렇게 하고, 여기는 이렇게 해주었으면 이라는 말은 없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 장혁주(133쪽)

그렇다면 잘못은 오로지 작가 장혁주에게만 있었을까? 저자는 장혁주와 그 작품을 둘러싼 반응들을 검토하며 한.일 양국 문단의 태도도 비판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장혁주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 앞섰고, 일본에서는 국책 홍보에 필요할 때마다 장혁주를 이용할 뿐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한국, 일본 할 것 없이 장혁주의 문학적 성장을 진심으로 바란 사람은 많지 않았으며, 장혁주는 그 고립 속에서 반은 독선적인, 그리고 반은 강요된 외로운 활동을 계속한 것이다.(198쪽)

요컨대 식민지 지식인으로 성장한 한 청년의 꿈과 포부, 그리고 좌절과 변질에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책은 그 복합성에 관한 천착의 산물이라 해도 좋다.

이 책은 한 외국인이 본 장혁주 연구이고, 특히 한국과 가장 깊은 관계가 있는 일본의 한 연구자의 눈에 비친 한국 작가의 연구이기도 한 만큼, 이론異論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을 계기로 장혁주와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조금이나마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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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저자의 말 / [초출일람] / [일러두기]

제1장_ 서 론
1절 머리말
2절 장혁주의 삶

제2장_ 작품의 서지적 고찰
1절 한국어 소설
2절 일본어 소설
3절 한·일 작품의 관계
4절 희곡「춘향전」春香傳과 방송극

제3장_ 작품에 대한 한·일 양국에서의 동시대의 반응
1절 한국에서의 반응
2절 일본에서의 반응
3절 김사량과의 대비(작품면)

제4장_ 작품 외의 글과 발언의 분석
1절 창작동기·사용언어·창작방법
2절 문학론과 작가론
3절 인생관·민족관
4절 대사회적 발언

제5장_ 장혁주에 대한 한·일 양국에서의 반응
1절 한국에서의 반응
2절 일본문학계의 상황과 장혁주
3절 일본에서의 반응
4절 김사량과의 대비(작가적 자세)

제6장_ 결론
1절 마무리
2절 과제와 전망

※참고문헌(A. 단행본, B. 논문 및 기타)
※부 표
(1) 장혁주 작품 서지(1930~1945년)
(2) 장혁주의 작품 이외의 글 일람(1930~1945년)
(3) 장혁주의 해방 후 작품抄(1945~1959년)(A.단행본, B. 작품)
(4) 장혁주에 관한 동시대의 글 일람(1930~1945년)
(5) 장혁주 관련 연보(1905~1945년)
※초록(A. 일문 요약, B. 영문 Summery)
부편 장혁주에 관한 보론[번역: 구인모]
1. 희곡『춘향전』과 그 상연(1938년)
2. 장혁주의 일본어 장편『아, 조선』嗚呼朝鮮에 대하여
3. 해방 후의 장혁주에 대하여
※장혁주 간략연보(1905~1997년)
※색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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