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메뉴

본문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에세이)
저자 : 조지 오웰
출판사 : 한겨레출판사
출판년 : 2010
ISBN : 9788984314238

책소개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이해자 조지 오웰의 삶과 사유를 만나다!

20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장편소설 등을 창작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날카로운 통찰, 특유의 유머, 통쾌한 독설로 유명한 저자의 에세이 중 가장 빼어나면서도 중요한 29편의 에세이를 엄선한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울림을 줄 만한 에세이만을 담아냈다. 서평과 칼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가 부랑생활을 체험한 이야기를 써서 가장 처음 발표한 를 출발점으로, 마지막으로 저술한 까지 쓰여진 순서대로 엮었다. 타인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감으로써 그가 볼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전생애에 걸쳐 인습과 관성을 거부한 저자의 독특한 삶과 사유를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인간'에 대한 경이로운 성찰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인간과, 인간의 본성과, 인간이 만든 제도에 대한 놀라운 성찰
인습과 관성을 거부하는 삶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생각을 틔운 작가
조지 오웰이 쓴 가장 빼어난 에세이 선집


조지 오웰의 삶과 사유를 이해하기 위한, 단 한 권의 책!

한겨레출판이 올해 1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펴낸 데 이어, 조지 오웰의 에세이 29편을 묶은 『나는 왜 쓰는가』를 출간한다. 오웰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동물농장』(1945)과 『1984』(1948)이지만, 오랜 세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려간 오웰은 엄청난 분량의 에세이와 칼럼, 서평을 썼다. 『고래 뱃속에서』(1940)와 『사자와 유니콘』(1941) 두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하긴 했지만, 그것 역시 일부였다. 생전에 다 묶이지 못했던 그의 에세이를 모은 책으로는 소설과 르포 이외의 중요한 글을 4권으로 엮은 저작집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이 가장 정통한 것으로 꼽히는데,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그 모든 텍스트가 번역되어 있지만, 한국의 경우엔 비교적 짧은 산문을 모아 놓은 단 한 권의 산문집이 있을 뿐이다. 이번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그간 소문으로만, 혹은 일부 발췌 번역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좀더 풍부한 오웰의 명문(名文)들을 한국어 텍스트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모두 29편의 에세이를 골랐는데, 그 가운데 21편이 국내 초역이다.

남과 다른 길을 감으로써 남과 다른 눈을 얻다

오웰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감으로써 남들이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열 살 전후 무렵 부잣집 아이들만 다니는 예비기숙학교에서 학비 일부 면제 장학생 신분으로 교장 부부의 차별을 경험했고,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했으나, 대학생 대신 피식민지 버마의 경찰간부가 되었다. 유럽에 돌아와서는 런던과 파리를 떠돌며 부랑자 생활을 경험한다. 탄광 지역에 들어가 광부들의 삶과 그들의 생활 조건을 취재하기도 하고, 프랑코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의용군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전한다. 그 자신 사회주의자를 자처했으나, 책상머리 좌파들과 그가 보기에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러시아 편향의 주류 사회주의자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골에 살면서 식료품 가게를 하거나, 2차대전 후 명사가 된 다음에도 한적한 섬에서의 은거를 택했다.
역자 이한중 씨가 오웰에 대해 “자신의 이력을 통해 패턴과 인습을 거부한 작가”라고 표현했듯이 그는 전 생애에 걸쳐 항상 조금씩 비켜나 있었고, 과감히 남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선택을 감행했으며, 그럼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가지게 된다. 이번 에세이 선집은 오웰이 맨처음 발표한 글인 부랑생활 체험기 「스파이크」에서부터 마지막 집필 원고인 「간디에 대한 소견」까지 오웰이 글을 쓴 순서대로 엮었으며 29편의 에세이를 통해 오웰 삶의 각 국면에 대한 세세한 이해, 정치적 입장, 현실에 대한 작가로서의 태도 등 인간 오웰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이해자, 조지 오웰

몸으로 세상을 겪은 오웰이 여타의 작가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타고난 영민함과 밑바닥 삶과 극한의 전쟁 체험 등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묶인 적잖은 에세이들이 오웰의 자전적 요소를 띠고 있는데, 그렇게 인간에 대한 남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 사건들, 오웰 자신이 삶의 전환적 순간이라 했던 사건들이 이 책 곳곳에 담겨져 있다.
자신을 차별한 예비학교 교장 부부를 통해,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그들의 인정과 총애를 받으려 했던 인간의 이중성을 어린 시절 이미 깨닫기도 하고, 식민지 경찰간부 생활을 통해 민족·인종 사이에 놓여진 위계와 그걸 공고히 하는 제도의 폐해를 절감했다. 게다가 계급을 막론해 젠체하기와 위선, 허영과 속물근성은 인간이 벗어던질 수 없는 숙명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비이성적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직시함으로써, 자신 작품의 인물 속에 그러한 인간을 표현해냈다. 그가 좌파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보냈던 까닭도, 적잖은 당시 좌파들이 “자본주의만 전복하면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거나 “진실이 알려지면 박해는 절로 패퇴하리라는” 혹은 “인간은 본래 선량하며 외부 환경 때문에 부패하는 것일 뿐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웰은 과연 왜 썼을까?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오웰은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라고 자신의 명확한 작가적 입장을 밝힌다.
문학이나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향한 이 똑부러진 일침은, 결코 정치적 신념에 복무하는 문학 작품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글에서 그는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며, 『동물농장』이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선언한다.
오웰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형태에 대한 반대” 입장에 서 있으며,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피억압자의 정서를 글로 표현했다. 한때 파시즘에 맞선 스페인 혁명에 도움이 되고자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가 택한 것은 글과 문학이었다. 그는 모든 형태 전체주의(나치의 파시즘과 스탈린식 공산주의, 자본주의)에 반대했다. 혁명가로서 전체주의와 싸운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의 폐해를 문학으로 표현함으로써 전체주의에 맞섰다. 그리고 50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전세계 독자들은 오웰이 던진 성찰의 ‘현실성’에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오웰의 문학적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그(민족주의자)는 역사를, 특히 동시대 역사를 거대 세력들의 끊임없는 성쇠로 보며,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자기편은 상승세에 있고 경쟁 상대는 하강 국면에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민족주의를 단순한 성공 숭배와 혼동해서도 안 된다. 민족주의자는 제일 강한 쪽과 한패가 되기만 하면 된다는 원칙 같은 걸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일단 자기편을 선택하고 나면, ‘자기편’이 가장 강하다고 자신을 설득시키며, 사실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갈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힘에 대한 갈망이되, 이 갈망은 자기기만으로 완화될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자는 극명한 거짓을 범하면서도 (자신보다 큰 무엇을 섬기고 있다는 의식 때문에) 자신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 - 180~182쪽

우리 마음의 일부는 인간이 고귀한 동물이며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 적어도 이따금씩은 존재의 끔찍스러움에 아연실색하는 일종의 내적 자아도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게도, 즐거움과 혐오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인체는 역겹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는 아무 수영장에나 가보면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기는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는 아니어도 많은 언어에서 성기의 명칭 자체가 욕설로 쓰인다. 고기는 맛있지만 푸줏간에 가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궁극적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끔찍스러워하는 똥과 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유아기를 지나도 세상을 여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며, 경이로움 못지않게 혐오스러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코딱지와 침, 인도에 싸놓은 개똥, 구더기가 가득한 채로 죽어가는 두꺼비, 어른의 땀 냄새, 대머리에 주먹코인 노인의 흉한 몰골이 주는 혐오감에도 크게 끌리는 것이다. - 327쪽

톨스토이는 부와 명예와 특권을 버렸다. 그는 모든 형태의 폭력도 포기했으며, 그로 인한 손해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강제의 원리를, 혹은 적어도 남에게 강제를 행사하고픈 ‘욕구’를 버렸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 평화주의와 무정부주의는, 겉으로는 힘을 완전히 포기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은 그런 심리적 습성을 부추긴다. 이를테면 당신이 일반적인 정치의 추잡함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어떤 신조를 받아들였다고 할 때 그 자체만으로 당신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수록, 남들도 다 자기처럼 생각해야 한다며 괴롭히기 십상이다. - 369~370쪽

2~3년에 걸쳐, 장학반 아이들은 성탄절 거위구이 뱃속 채워지듯 학습으로 꽉꽉 채워져야 했다. 그리고 그 학습이란! 재능 있는 소년의 진로를 불과 열두세 살에 치르는 경쟁 치열한 시험에 좌우되도록 하는 일이란 잘 봐줘도 사악한 짓인데, 성적표에 기재된 과목과 과정을 전부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이튼이나 윈체스터 같은 곳에 장학생을 보내는 예비학교들이 지금도 있는 것 같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의 경우에는 솔직히 모든 게 일종의 신용 사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줄 것들만 배우고, 뇌에 부담이 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잘 안 보는 지리학 같은 과목은 거의 무시됐고, ‘문과classical’인 경우에는 수학도 무시됐다. 과학은 어떤 식으로도 가르치지 않았고 여가 시간에 읽으라는 책들도 ‘국어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뿐이었다. 장학생 선발 주요 과목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중시됐지만 그나마도 일부러 겉만 번지르르하게, 그리고 부실하게 가르쳤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리스어나 라틴어 저자의 책은 단 한 권도 통독을 해본 적이 없었다. 번역 문제로 나올 만해서 골라낸 구절들만을 읽을 뿐이었던 것이다. 장학생 선발 시험을 보기 전 1년 남짓 동안,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출문제를 달달 외는 데 바쳤다. - 383~384쪽

나는 학생들 모두가 그녀를 미워하면서 두려워했다고 말해도 틀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더없이 비굴하게 그녀에게 아양을 떨었고, 그런 감정의 표층을 형성한 것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충성심 같은 것이었다. - 404쪽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다만 지금 우리가 정치적 충심과 문학적 충심 사이에 그은 선을 보다 선명하게 긋자는 것이다.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작가가 예민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와 관련된 지저분한 일을 기피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글이 당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정파 우두머리들의 지시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해’ 쓰는 것도 삼가야 한다는 뜻인가? 이 역시 결코 그렇지 않다! 원한다면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정치적인 글을 써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개인으로서, 외부자로서, 기껏해야 정규군의 측면에 있는 환영받지 못하는 게릴라로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겨야 하는 전쟁이라 생각해서 흔쾌히 전쟁에 나가 싸우면서도 전쟁 선전문을 쓰는 것은 거부하는 게 온당하다는 것이다. - 444~445쪽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스파이크 The Spike (1931/04)
교수형 A Hanging (1931/08)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 (1936/가을)
서점의 추억 Bookshop Memories (1936/11)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1937/07, 09)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Why I Joined the Independent Labour Party (1938/06)
마라케시 Marrakech (1939/12)
좌든 우든 나의 조국 My Country Right or Left (1940/가을)
영국, 당신의 영국 England Your England (1940/12)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Wells, Hitler and the World State (1941/08)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Looking Back on the Spanish War (1942/가을)
시와 마이크 Poetry and the Microphone (1943/가을)
나 좋을 대로 As I Please (1944/01)
민족주의 비망록 Notes on Nationalism (1945/05)
당신과 원자탄 You and the Atom Bomb (1945/10)
과학이란 무엇인가? What Is Science? (1945/10)
문학 예방 The Prevention of Literature (1946/01)
행락지 Pleasure Spots (1946/01)
“물속의 달” “The Moon under Water” (1946/02)
정치와 영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04)
두꺼비 단상斷想 Some Thoughts on the Common Toad (1946/04)
어느 서평자의 고백 Confessions of a Book Reviewer (1946/05)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1946/여름)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Politics vs. Literature: An Examination of Gulliver's Travels (1946/09~10)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How the Poor Die (1946/11)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Lear, Tolstoy and the Fool (1947/03)
정말, 정말 좋았지 Such, Such Were the Joys (1947/05)
작가와 리바이어던 Writers and Leviathan (1948/03)
간디에 대한 소견 Reflections on Gandhi (1948/가을)

조지 오웰 연보
역자 후기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