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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4.19
새로운 4.19
저자 : 안동일
출판사 : 예지
출판년 : 2010
ISBN : 9788989797715

책소개

올해는 4.19혁명이 일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어깨를 걸었던 ‘청년 학도’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원로가 되어 있다. 저자 안동일 변호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고 있던 1960년에 그는 4.19혁명의 현장에 있었다. 그 경험은 “시위에 직접 참가한 학생의 손으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낳았고, 그 사명감으로 2월 28일 대구 학생시위로부터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에 이르기까지 피로 물든 59일간을 기록한 책을 소개한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59일간의 뜨거운 현장 기록!





4.19혁명은 진행형이다



우리에겐 민주주의와 관련해 소중한 경험들이 많이 있다. 6월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부마항쟁…. 이 모든 경험의 시발점이자 정신적 바탕은 4.19혁명이다.



올해는 4.19혁명이 일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어깨를 걸었던 ‘청년 학도’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원로가 되어 있다. 저자 안동일 변호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고 있던 1960년에 그는 4.19혁명의 현장에 있었다. 그 경험은 “시위에 직접 참가한 학생의 손으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낳았고, 그 사명감으로 2월 28일 대구 학생시위로부터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에 이르기까지 피로 물든 59일간을 기록했다. 그 기록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주의 발전이 이루어지기까지 4.19혁명은 미완이며 진행형이다. 어떠한 독재에도 굴하지 않았던 우리의 소중한 경험이 담긴 이 기록이 4.19혁명 50주년을 맞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역사상 가장 악랄했던 3.15 부정선거



일제 잔재세력을 정권에 들이고, 미국의 자본주의 재편성 전략과 냉전과 분단 이데올로기에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온갖 부정부패로 사회와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어간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1960년 전부터 이미 물이 가득한 컵과 같은 상태였다. 그 컵에 마지막 물 한 방울의 역할을 한 것이 바로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4대 정부통령 선거였다.



당시 최인규 내무장관의 지휘로 4할 사전 투표, 3.5인조 공개 투표, 투표 현장에서 압력을 가하기 위한 완장 부대 편성 등의 구체적인 방법이 지시되었고, 수송 도중 투표함 바꿔칠 것, 개표시 야당 표를 자유당 표로 바꿔칠 것, 모든 투표구에서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을 85% 이상으로 만들 것 등을 골자로 한 세부 계획을 세우며 자유당은 1년 전부터 선거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기 위한 사전준비를 치밀하게 해왔다. 이런 구체적인 계획하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악랄한 불법.부정 선거가 실시되었던 것이다.



민주제도의 골간인 의회제도와 선거제도가 자유당 독재정권에 의하여 완전히 부정되고 유린되었을 뿐 아니라,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기본적 자유권마저 자유당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에 의하여 농락당하던 선거 당시의 상황은 민주주의의 종언에 다름 아니었다. 저항할 것이냐, 독재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냐. 이렇듯 절박한 상황에서 4월혁명은 잉태되었다.





기적의 4월



일요일인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는 고등학생들을 야당의 유세장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강제로 등교시켰고, 이에 항의해 고교생들이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3월 15일, 마산에서는 민주당 참관인의 투표함 확인을 통해 ‘4할 사전 투표’가 사실임이 확인되자 시민과 학생 들의 부정 선거 규탄시위는 마산 시내를 뒤엎었고,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3.15 마산시위 당시 행방불명되었던 김주열의 시체가 한 낚시꾼에 의해 4월 11일 오전 11시 마산 합포만 중앙 부둣가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발견되었다. 훗날 박종철의 죽음이 6월민주항쟁을 촉발했듯이 김주열의 주검은 4월혁명의 뇌관에 불을 당겼다. 그로부터 전국적으로 규탄시위가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더해 4.19 전야인 4월 18일 밤에는 고대생 시위대가 깡패들에게 습격당하여 부상을 입었다는 소문이 대학가를 분노케 하였다. 그리고 4월 19일, 전국적으로 대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하늘을 찌를 듯이 일어났다. 연일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남녀노소 모두가 자유당 독재정권의 타도를 외쳤고, 4월 25일 오후에는 전국 대학교수단이 학생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규탄시위에 힘을 보탰다. 결국 그 다음날인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학생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기적적인 4월혁명이 이 땅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혁명은 행동자와 수습자가 같아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4월혁명의 행동은 학생과 시민이 하였으나, 수습을 맡은 허정 내각과 장면 정권 등 기성 정치인들이 실패함으로써 5.16군사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세우자는 열망은 4.19혁명을 이루어냈지만 쿠데타에 의하여 무참히 꺾였던 것이다. 그 후 30여 년 동안 우리는 다시 엄혹한 폭압 속에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물살



이탈리아의 혁명가 마치니의 말처럼, 자유와 민주의 나무는 “시민의 손으로 심어지고, 시민의 피로 양육되고, 시민의 칼로 수호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않는”나무다. 우리는 군부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어려운 고비마다 4.19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를 위하여 피의 대가를 치르며 용기 있게 일어났다. 6.3학생운동, 유신반대투쟁,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등이 그것이다.



4.19는 그렇게 지금까지 우리에게로 이어져 왔다. 이 땅에 세운 민주주의의 증인으로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힘에 굴하지 않는 세찬 물살로서 4.19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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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증보판 서문

책머리에



1. 4월이 오기까지 - 4·19 혁명의 배경

2. 혁명의 서곡 - 2·28 대구 학생시위

3. 민주주의의 죽음 - 3·15 부정선거와 1차 마산 시위

4. 3·15 부정선거는 무효다 -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전국의 항의 시위

5. 김주열, 혁명에 불을 붙이다 - 2차 마산 시위

6. 혁명의 불길은 전국으로 - 4·18 전국 시위

7. 심판의 날 - 4·19 총궐기

8.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 대학 교수단의 시위와 이승만의 하야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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