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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종이
저자 : 로타어 뮐러
출판사 : 알마
출판년 : 2017
ISBN : 9791159920622

책소개

종이는 나무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이 관계는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만 이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후반부터 적용되는 사실이다. “제지 시장에서 목재펄프 기술이 성공을 거둔 것은 1867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통해서였다.”(305쪽) 그렇다면 그 이전의 종이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이 책 <종이>는 고대부터 중세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종이의 역사를 상세하게 추적한다. 중국에서 유래한 종이가 아랍 문화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고, 13세기 이후 유럽에서 일상에 뿌리 내리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제시된다. 유럽에서는 그 전까지 파피루스와 양피지가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혼재하다가, 헌 옷(넝마)을 소재로 한 아랍 제지술을 받아들인다. 근대에 들어서는 보다 값싼 셀룰로오스 종이가 대세로 자리 잡는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단순한 제지술의 역사를 넘어 그것이 당대의 사회/문화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까지 두루 살핀다는 것이다. 예컨대 17세기에 종이는 우편제도와 결합해 서신 왕래를 자극했고, 이는 학자들 간의 서신 교류로 이어져 학술 발달을 촉진했다. 품질이 조악하지만 값싼 종이의 발명은 근대적인 신문이 우후죽순 생기도록 유도했고, 이로 인해 여러 문화적 현상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가 보이는
아날로그 종이의 완전한 역사

독일어권의 탁월한 문예비평가에게 주어지는
알프레트케르 상(2000년)과 요한하인리히메르크 상(2008년) 수상 작가!

책 소개


종이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마법의 물질’이다. 어떤 점이 종이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들까?
종이는 시대별로 놀라운 변신을 거듭했다. ‘페이퍼’의 어원이기도 한 ‘파피루스’로 종이를 만든 것은 이미 11세기에 끝을 맞았지만, 중세 수도원에서 양피지로, 근세 도시에서 넝마(헌 옷) 종이로,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나무 종이로 화려한 변신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종이가 ‘마법의 물질’인 것은 비단 그런 소재적인 측면 때문만은 아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그것이 일종의 ‘미디어’로서 인간과 사회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종이는 그 시대의 다른 매체들과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그 속에서 정치 및 사고방식 그리고 사회제도의 양상을 바꾸었다.
이 책은 제지술의 역사를 서사의 축으로 삼아 상세하게 살펴보는 한편, 특히 미디어 이론의 관점에서 ‘종이의 시대’를 재구성한다. 이 책의 이러한 독특한 접근방식은 종이가 단지 과거의 매체가 아니라, 현재 디지털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치열하게 사유해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저자는 유럽의 탁월한 문예비평가로서 문학작품 속의 다채로운 장면들을 포착해 종이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라블레와 그림멜스하우젠을 시작으로 발자크와 허먼 멜빌을 거쳐 제임스 조이스와 폴 발레리까지, 역사와 문학이 교직된 텍스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종이의 역사
종이는 나무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이 관계는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여러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만 이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후반부터 적용되는 사실이다. “제지 시장에서 목재펄프 기술이 성공을 거둔 것은 1867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통해서였다.”(305쪽) 그렇다면 그 이전의 종이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이 책 《종이》는 고대부터 중세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종이의 역사를 상세하게 추적한다. 중국에서 유래한 종이가 아랍 문화를 거쳐 유럽에 전파되고, 13세기 이후 유럽에서 일상에 뿌리 내리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제시된다. 유럽에서는 그 전까지 파피루스와 양피지가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혼재하다가, 헌 옷(넝마)을 소재로 한 아랍 제지술을 받아들인다. 근대에 들어서는 보다 값싼 셀룰로오스 종이가 대세로 자리 잡는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단순한 제지술의 역사를 넘어 그것이 당대의 사회/문화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까지 두루 살핀다는 것이다. 예컨대 17세기에 종이는 우편제도와 결합해 서신 왕래를 자극했고, 이는 학자들 간의 서신 교류로 이어져 학술 발달을 촉진했다. 품질이 조악하지만 값싼 종이의 발명은 근대적인 신문이 우후죽순 생기도록 유도했고, 이로 인해 여러 문화적 현상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저자는 독일의 뛰어난 비평가로서, 당시 종이가 사상 및 제도와 맺고 있던 관계를 다채로운 예시를 들어 보여준다. 이때 시야가 단지 인쇄된 형태의 도서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쪽지와 게임용 카드, 가위로 오려낸 종이, 관청서식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구텐베르크 시대’의 배후에 있는 세계까지 모두 아우른, ‘종이시대’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한다.

종이의 역사를 통해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를 가늠하다
종이는 미디어다. 그리고 미디어는 메시지다.
그러나 과연 어떤 메시지인가? 다시 말해 종이는 미디어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가?

이는 디지털 미디어의 도전이 정확히 어떤 성격의 것이며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사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이다. 그간 이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이른바 구텐베르크 시대의 협소한 이해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책과 인터넷을 단순히 대립시키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화는 ‘구텐베르크 시대’가 아니라 ‘종이의 시대’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따라서 그보다 심오한 역사적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 아래 종이가 시대별로 어떤 재료와 물성과 형태로 전개되어왔는지를 밝히고,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상세하게 살펴본다. 이를테면 석판이나 점토판의 경우 보존성은 좋지만 ‘무거운’ 매체로서 저장기능이 강조된다. 하지만 종이 같은 ‘가벼운’ 매체의 경우 공간적으로 폭넓은 소통을 촉진하고, 이로 인해 광활한 영역의 통제가 가능해진다. 절대주의 시대에 펠리페 2세가 ‘종이의 왕’이라고 불리며 평생 서면 보고를 선호한 것은 그저 개인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같은 종이라고 해도 ‘인쇄/비인쇄’ ‘제본/비제본’의 매트릭스 안에서는 서로 다른 매체적인 의미를 띠었다. 구텐베르크의 세계에서 ‘인쇄/제본’된 종이는 가장 확정적인 형태의 콘텐츠였고, ‘비인쇄/비제본’된 종이는 사적이고 비밀스럽고 비공식적인 의미를 품고 있었다. 이러한 관계는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서,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그 시대의 풍경을 형성했다.
저자는 제지의 역사를 주요 서사 축으로 삼아 따라가면서, 미디어 이론의 관점에서 각 시대마다 형성되었던 옛 미디어와 새 미디어 간의 긴장과 경쟁, 협력의 양상을 살펴본다. 이는 특히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에 제기되는 질문들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신문 스크랩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이고, 양면을 지녔지만 동시에 기록할 수 없는 쪽지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자책과 전산화된 일간지의 관계는 아날로그 도서와 인쇄된 신문의 관계와 같은 것인가? 낱낱의 페이지는 서로 어떤 관계에 있고, 아날로그 종이의 기본 단위에 해당하는 디지털 종이는 정확하게 무엇인가?”(417쪽)
《종이》는 매체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마련해준다. 이 책으로부터 오늘날과 역사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띠었던 매체 관계를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향후 전자종이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구텐베르크 시대’라는 개념에는 인쇄기와 인쇄된 책을 근대 미디어 이론의 원근법적인 기준점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 책에서는 종이가 어떻게 서구문명의 기본 소재가 되었는지, 흔히 구텐베르크 시대로 알고 있는 시대 공간에서 종이의 핵심적인 지위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는지 등 제지기술의 역사에 대한 모든 담론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전달매체의 기원이라고 할 구텐베르크 시대는 그것을 종이시대에 포함시킬 때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전자종이가 아날로그 종이와 경쟁을 시작한 최근 수십 년간의 과도기까지도 잘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전자매체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디지털화의 인프라 구조로 인해 구텐베르크 시대뿐 아니라 종이시대가 동시에 변하고 있다는 통찰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
종이에는 다층적으로 인간과 인연을 맺은 역사가 담겨 있다. 우선 르네상스 이후 정치적인 격동기마다 정보의 전달과 보존매체로서 발전을 거듭한 정치적 측면이 있다. 또 부기와 어음·지폐·주식·게임용 카드 등 경제적인 측면이 있고,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하는 정기간행물의 기본 소재로서의 사회적 측면이 있다.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바라본 종이의 역사는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물질과 인간정신의 상호영향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카라바체크, 고이타인, 페브르, 브라이트코프, 브로델, 발레리 등 열거하기에 너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참고문헌을 통해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문학에 나타난 종이의 본질과 인간과의 연관성을 각국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을 통해 분석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세계문학사이자 탁월한 문학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괴테의 《파우스트》,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 담긴 종이세계는 인간의 지적·사회적 삶의 동반자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칼라일, 슈티프터, 장 파울, 찰스 디킨스, 허먼 멜빌에서부터 제임스 조이스, 휘트먼, 하인리히 만, 발터 베냐민을 거쳐 윌리엄 개디스와 인터넷 작가인 최근의 라이날트 괴츠에 이르기까지 매체의 기능이 아니라 종이의 물질성 자체가 얼마나 인간의 생존과 필수불가결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에서 독자는 《미메시스》(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서구문학에 나타난 현실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전개된 미디어 혁명을 실감할 것이다. 이런 문학적 분석에는 당연히 근대문학이 문학 자체의 자극적 요인 외에 역사의 탁월한 기록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책속으로 추가

3부 대대적인 확산
“우리는 재산이 평준화되는 시대, 그러니까 모두가 더 가난해지면서 왜소해지는 시대로 다가가고 있어요. 큰 그림을 걸 공간이 없어서 작은 그림을 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더 싼 속옷과 더 싼 책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속옷과 책은 이제 오래가지 못해요. 이것이 전부죠. 곳곳에서 생산제품의 견고성이 사라지고 있어요.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문학과 과학, 정치를 위해 아주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_257쪽

앙굴렘에서 시인의 명성을 안겨주고 그에게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해줄 것처럼 보인 원고를 팔아서 상황을 안정시키겠다고 생각할 때, 서점 주인은 그를 훈계한다. 뤼시앵은 시인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에 불과하며 문학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_264쪽

그와 마주치는 인간은 프랑스혁명 이후 생겨난 군상으로서 교양이라곤 없이 책의 내용에는 무관심한 새로운 유형의 출판업자들이다. 출판업자가 되는 데는 면허나 전문지식이 필요 없고 단지 자본만 있으면 된다. 다수의 출판업자는 이렇다 할 자기자본도 없이 신용융자를 받아 시장에 진출하여 단기간의 이익을 노린다. 단지 신용구조와 어음의 상환기일을 어기지만 않으면 된다. 큰 인기를 누리는 책은 매출에 거의 리스크가 없는 작가들이 내놓은 것으로 각 분야의 입문서나 오락문학 같은 것들이다. 이런 유형의 출판사에서 매력이 있는 원고란 단기간에 이익을 낼 가능성이 있는지가 기준이 된다._264쪽

단명하는 제품인 정기간행물이 느린 속도로 성장하는 책을 희생시켜 주도권을 잡고 전반적으로 문학 시장의 법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_265쪽

디킨스는 싸구려 모험소설을 곁눈질하면서 《황폐한 집》을 썼다. 이런 소설은 막 글자를 터득한 독자를 위해 저질 종이에 인쇄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가리킨다. (...)《황폐한 집》 전편을 통해 흐르는 천하고 더러운 종이의 흐름은 20세기 초반의 펄프 픽션(싸구려 통속소설-옮긴이)이라는 개념과 합류했다는 말도 있다._273쪽

성전기사단의 근대적인 후계자라고 할 대도시의 독신자들은 독신제의 엄격성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인 큐피도가 안내하는 세계는 에로스가 완전히 정지된 공간이다. 끝에 가서 방문객이 경험하듯이 제지공장은 “일요일과 추수감사절, 단식일(교회에서 지정하는)을 제외하고 매일 하루 열두 시간씩, 1년 내내” 작업이 지속되도록 오로지 ‘처녀’만 고용하고 기혼 여성은 절대 쓰지 않는다. 임신으로 공장가동이 멈추면 안 되기 때문이다._284쪽

“정말 묘한 기분이에요. 기계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백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수많은 전지가 별별 용도로 다 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지금은 텅 비어 있는 이 종이에 온갖 글씨를 다 쓴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설교 원고, 변호사의 변론서, 의사의 처방, 연애편지, 혼인증명서, 이혼판결문, 출생신고서, 사형선고서 등등 끝이 없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 다시 내 앞에 있는 하얀 종이를 보면 존 로크의 유명한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존 로크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품고 있는 생각은 없다고 했죠. 인간의 정신은 태어날 때 백지 상태와 같다는 비유예요. 이후 살아가면서 그 종이에 무엇이든 쓰겠지만 무슨 글자를 쓸 것인지 미리 알 수는 없다는 말이죠.”_292쪽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초지기에 대한 묘사와 그 악마적 속성을 짜맞추는 멜빌의 수법과 유사하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경제에 대한 작품이 아니라 오래된 괴물의 신화 속에 최신 산업을 삽입하는 시도이기도 하다._293쪽

지라르댕의 기본 아이디어는 뉴스와 소설을 섞어서 정보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 즉 이야기를 곁들인 보도 관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전통적으로 우세하던 수사 및 논란 중심의 논평 기사를 버리고 정치 중심적인 미디어라고 할 신문에 소설이 들어간 문학적·오락적 체제를 도입했다. 이와 같은 구상에서 지라르댕의 혁신 중에 가장 유명한 ‘연재소설’이라는 제도가 생겼다._303쪽

실제로 원료 공급원으로서의 숲이 넝마 거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산림 관리라는 측면에서 제지산업은 전통적인 벌목이 퇴조하면서 생긴 빈틈을 메웠다. 제련산업에서는 19세기 들어와 전반적으로 석탄이 연료로서 목재의 자리를 빼앗았고 이와 동시에 건축경제에서는 점점 철과 석탄이 목재 소비를 대신했다. 이렇게 해서 제지산업이 숲을 필요로 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원료 공급원으로서의 숲은 종이생산에 길을 열어주었으며 종이생산이 산업화되는 과정에 기여했다. 점점 경쟁력이 강화되는 대형 기계는 이제 갈수록 완벽해지는 화학적 원료 조달 방식과 결합하게 되었다._306쪽

신문을 대량으로 발행하려면 신문을 구독할 능력과 의지가 있고 그에 필요한 돈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러므로 문자 해독률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동시에 노동과 여가시간을 둘러싼 환경이 발전해야 하고 신문구독에 필요한 에너지원이나 시간자원도 갖추어져야 한다. 또 신문 발행 및 배포와 관련된 정치경제적 제한도 해제되어야 한다. 19세기 전반기에 이런 제한조치로서 국가가 신문에 개입한 것이 독일에서만 있었던 현상은 아니다._314쪽

신문지는 물질적인 종이로서 사라지는 전신국의 전보와 다를 바 없이 비전승非傳承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미 19세기에, 아침에 받아본 일간지가 저녁이면 변소로 들어간다는 유명한 농담이 있었다. 이 농담 속에는 정기간행물이 휴지라는 비전승물로 바뀐 종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남으로써 사회에 공급되는 종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통찰이 들어 있다._325~326쪽

완성된 책은 그 자체로는 탄생에 얽힌 비밀을 별로 말해주지 않는다. 화가의 스케치가 완성된 그림보다 때로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내듯이 작품의 구상과 스케치, 초고에 그 사람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_327쪽

이렇게 종이 기반의 미디어가 전기 미디어로 대체되는 현상은 20세기에 장·단기적으로 공생관계를 유지한 경우와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가령 철도는 열차시간표를 끌어들였고 전화는 전화번호부를 만들어냈으며 하다못해 크란츠라는 전문잡지사에서는 축음기와 라디오, 텔레비전을 촉수처럼 여러 가닥의 종이 리본으로 장식하기도 했다._371쪽

손과 종이와 펜의 통일성이 해체되는 것을 미묘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일도 적지 않았으며, 기계 때문에 글씨가 개성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손 글씨와 기계 글씨의 관계를 바라보며 작가 시점에서 터져나온 불만의 소리는 타자지에 글자를 치는 활자봉의 소리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별 효과가 없었다. 타자기의 본거지는 사무실이었기 때문이다._372쪽

새 인쇄술의 여백 관리는 화랑의 하얀 벽이나 신성함에 대한 강조 또는 건축가의 초월적인 이상, 빛과 공기에 대한 사회적 유토피아의 신화와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_377쪽

스크랩의 핵심은 단순히 시간 순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주제별로 분류해서 표제를 붙이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요소를 떼어내 다른 기준에 따라 묶고 다시 유기적인 사회조직으로 공급하면서 ‘수명이 짧은 일간지의 유통을 늘린다’는 제2의 질서를 지닌 종이매체가 생긴 것이다._387쪽

발자크와 조이스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페 디베르fait divers(프랑스 문화계에서 일상적 범죄 혹은 사건이 문학과 예술의 원천으로 확장해나가는 특징을 가리키는 용어-옮긴이)에서 큰 권력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이제 일시적으로 지면에 실리는 기삿거리가 아니라 자체의 법칙을 지닌 미니 장르가 되었고 우연과 인과율의 충돌을 연출하는 무대가 되었다. 연재소설이 긴장을 유발한다면 페 디베르는 경악을 노린다._388쪽

컴퓨터 모니터에 뜨는 워드프로세서의 하얀 바탕은 문자의 삭제와 지속적인 저장이 가능한 복기지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라면 다른 글씨로 바뀌어 잊혔다가 하드디스크에서 복구할 수 있는 자료에서 무의식의 형상을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결합되면서 프로이트의 〈복기지에 대한 소고〉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저장과 삭제의 양극성에 대한 순환선택이 발생한다._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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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프롤로그
미생물 가설

제1부
유럽의 종이 보급

제1장
사마르칸트에서 온 종이
1.1. 아랍 사이의 왕국
1.2. 서예와 종이바구니
1.3. 셰헤라자드의 세계
1.4. 티무르와 줄라이카

제2장
도취감에 부풀어
2.1. 유럽 제지공장의 융성
2.2. 종이, 학자, 카드
2.3. 문서의 융성: 종이의 왕, 관청과 서기
2.4. 제노바의 상인과 그의 익명 조합원
2.5. 넝마주이, 필경사, 관청

제3장
보편적인 물질
3.1. 마셜 맥루한과 라블레의 팡타그뤼엘리옹
3.2. 해롤드 이니스, 우편제도와 메피스토의 종이쪽지
3.3. 종잇장 속의 세계: 비침무늬, 치수, 색깔

제2부
인쇄면의 배후

제1장
인쇄된 것과 인쇄되지 않은 것
1.1. “필사본에서 인쇄본까지”라는 공식의 함정
1.2. 백지
1.3. “~라는 문서 중에서”

제2장
모험가와 종이
2.1. 돈키호테, 인쇄소와 펜
2.2. 피카로-종이: 짐플리치우스 짐플리치시무스와 털깎기용 칼
2.3. 로빈슨의 일기와 잉크, 시간

제3장
투명 인쇄술
3.1. 편지지를 사용하는 서간소설의 위장술
3.2. 로렌스 스턴, 직선과 대리석문양 종이
3.3. 인쇄물의 색인화: 장 파울, 리히텐베르크, 초록

제3부
대대적인 확산

제1장
초지기라는 악령
1.1. 제지의 기계화
1.2. 시대의 베틀, 프랑스 혁명과 신용
1.3. 발자크, 저널리즘과 『잃어버린 환상』의 종이를 둘러싼 음모
1.4. 필경사의 비밀: 찰스 디킨스와 네모 씨
1.5. 풀스캡과 여자노동자: 허먼 멜빌과 초지기

제2장
신문용지와 대중지의 등장
2.1. 원료기반의 한계탈출
2.2. 신문, 신문가격과 충복
2.3. 에밀 졸라, 과 드레퓌스 사건

제3장
밝혀진 내면세계
3.1. 빌헬름 딜타이, 역사주의와 문서 유산
3.2. 헨리 제임스, 이디스 워튼, 그리고 친필기록 사냥
3.3. 마법의 등: 종이와 인테리어

제4장
현대의 품목
4.1. 타자용지, 데클 에지와 여백
4.2. 제임스 조이스, 신문지와 가위
4.3. 윌리엄 개디스, 문서작업의 위기, 펀치카드
4.4. 라이날트 괴츠, 복기지와 종이 냄새

에필로그
아날로그와 디지털

주석
참고문헌
그림출처
감사의 말
인명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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