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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와 체제 위기 (2%의 대한민국, 98%의 비국민)
정권 교체와 체제 위기 (2%의 대한민국, 98%의 비국민)
저자 : 이의엽
출판사 : 공감
출판년 : 2022
ISBN : 9791197408250

책소개

이 책은 서문과 전체 6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책의 첫 장이 〈20대 대선과 정치의 퇴행〉입니다. 촛불항쟁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과 사회 개혁에서 실패하고, 보수로의 퇴행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내로남불’(naeronambul)의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팠고, 결국 반사이익의 어부지리로 적폐세력의 본진 국민의힘이 기사회생하여 정권을 잡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저자는 ‘문제는 대선 이후’라고 말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경제 위기, 그리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와 집단적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현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서문과 전체 6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책의 첫 장이 〈20대 대선과 정치의 퇴행〉입니다. 촛불항쟁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과 사회 개혁에서 실패하고, 보수로의 퇴행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내로남불’(naeronambul)의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팠고, 결국 반사이익의 어부지리로 적폐세력의 본진 국민의힘이 기사회생하여 정권을 잡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저자는 ‘문제는 대선 이후’라고 말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경제 위기, 그리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와 집단적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현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책의 2장 〈민주의 가면과 진보의 참칭〉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개혁에 대해 그 본질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의 정책과 입법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개혁의 본질을 파헤치고 따져보는데요. 가덕도특별법, ‘빚 내서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 부자 감세 특혜의 세제 개악 등에서 민주당의 계급적 본질이 드러납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광주학살의 원흉 노태우를 성대하게 ‘국가장’으로 예우했는데요. 민주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기의 민낯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러니 민주당을 진보라고 착각하면서 민주당을 걱정하는 것은 ‘세상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합니다. 민주당은 민주의 가면을 쓰고 진보를 참칭하면서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책의 3장은 〈회색 코뿔소와 돈 룩 업〉입니다. 부채 거품으로 대변되는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분석합니다. 집값 폭등으로 떼돈을 번 부동산 부자들의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주자는 데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한통속입니다. 마치 집 부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모양새인데요. 그래서 이 책에 ‘2%의 대한민국, 98%의 비국민’이라는 부제가 달렸습니다. 이미 한국 경제는 금리 인상과 물가 급등으로 부채 경제에 위기의 경보가 울리고 ‘회색 코뿔소’의 경고등이 켜졌는데요. 책의 앞표지에 회색 코뿔소 그림이 실린 이유입니다.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위정자와 주류 언론은 애써 보지 말라고 딴청을 부리고 있습니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신랄한 풍자가 오늘 한국의 적나라한 현실입니다.

책의 4장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나〉 편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미국에선 지금까지 100만 명 가까이 사망했고 지난해에만 4,74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자산이 폭증해 떼돈을 벌었지요. 빈부 격차와 사회 양극화로 쪼개진 ‘두 개의 미국’이 재난 상황에서 그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인데요. 인종차별과 총기 범죄가 만연해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침략을 비롯하여 침략과 약탈을 일삼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00여 개 나라를 초청해 화상으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는데요. 희대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지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그 회의에 참석했고요.

책의 5장은 〈상명하복의 철통같은 한미동맹〉입니다. 저자는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치권과 재벌들의 ‘충성 맹세와 조공 행렬’이 이어졌다고 비판합니다. 5월 21일 발표한 한미 공동성명은 철통같은 한미동맹을 재확인한 사상 최악의 굴욕 외교의 산물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과 온갖 비난을 일삼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환영 일색일 정도였으니까요. 문재인 정부는 전시작전지휘권을 환수하지 못했으며, 한미연합사령부는 여전히 미국군이 사령관이고 한국군이 부사령관입니다. 아무리 한미동맹을 ‘혈맹’이라고 미화해봐야 명령하고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관계가 ‘동맹’으로 바뀔 순 없지요.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철통같은 동맹보다 ‘더 깊고 강력한 동맹’을 역설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복종하고 수그리겠다는 것일까요.

책의 마지막 장은 〈사회구조의 변혁〉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내세웠던 ‘평등, 공정, 정의’가 ‘조국 사태’ 때 민낯이 드러나 청년세대의 분노를 촉발했습니다. 그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공정’을 강조하면서 ‘능력주의’를 찬양하고 ‘젠더 갈라치기’를 하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평등 없는 공정의 함정에도 불구하고, 이게 먹혔습니다. ‘수저 계급’이 고착되고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진 ‘헬 조선’의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사회구조를 놔둔 채 청년들을 탓하는 것은 그들의 화만 부채질할 뿐입니다. 저자는 청년들에게 좌절과 포기를 강요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변혁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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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은 2018년 3월 연구소를 개소한 이래 한 주도 빠짐없이 월요일 아침마다 시사칼럼을 써서 연구소 회원들에게 전송하고 있습니다. 이 칼럼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데요. 이번에 네 번째 발간하는 책이 『정권 교체와 체제 위기』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 프레임을 극복하고 민주에서 진보로 전진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지난해 간행한 이 소장의 세 번째 칼럼집 『민주에서 진보로』의 Ⅱ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문재인 정부 5년의 개혁 정책이 자산 격차와 불평등 심화로 귀결되면서 실패로 판명 났고 결국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는데요.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강한 건 현 정부에 대해 실망한 민심의 반영이었지요. 민주에서 진보로 전진하기는커녕 되레 보수로의 퇴행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대선 선거운동 기간에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라는 현수막을 보면서 그걸 수긍하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그를 검찰총장으로 발탁하고 기어이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 누구인가?”라고, 저자는 반문합니다.

집값 폭등으로 대변되는 민생의 위기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와 집권 여당의 무능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2020년 4·15 총선 때 ‘개혁을 위해 힘 있는 여당이 필요하다’고 표를 달라고 애원했었고, 마침내 의회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단독 입법권을 갖게 된 ‘힘 있는 여당’ 민주당이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라고, 저자는 묻습니다. 그들은 잡으라는 집값은 안 잡고 되레 종합부동산세를 잡겠다고 부자 감세 입법을 밀어붙였던 것입니다.

종부세는 집값이 상위 2% 안에 드는 주택 소유자에게만 부과되며, 절대다수 국민은 종부세와 무관합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의 말마따나 “전체 국민들 중 약 98%의 국민들께는 고지서가 발송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98%에 이르는 절대다수 국민들은 종부세 고지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민주당은 선거 때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다가, 정작 국회에 들어가선 대한민국 2%의 ‘슈퍼 울트라’ 부자들 편을 듭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세상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질타합니다. 최저임금을 걱정해야 할 노동자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세 걱정을 한다면 제정신이 아니듯이,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패배해 야당이 되는 것을 걱정하는 건 1등 재벌 삼성이 2등으로 밀릴까 봐 걱정하는 격이라는 일침입니다.

금수저가 은수저로 되고 은수저가 금수저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나도 흙수저의 신분에는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그런데 금수저와 은수저의 자리다툼에 흙수저가 자기 일인 양 감정이입을 하면서 일희일비한다면 얼마나 ‘웃픈’ 코미디일까요? 하물며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민주당 걱정을 한다면 어떨까요? 남 걱정하기에 앞서 자기 정체성부터 올바로 자각해야 착각과 환상에서 깨어나 쓸데없는 걱정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노태우의 국가장을 집행하였습니다. 이것은 민주당 정부가 ‘민주’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 민낯의 본색을 드러난 일대 사건이라고 저자는 규탄합니다. 노태우는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광주 시민을 학살한 죄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던 자인데,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한 살인마를 국가장으로 예우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냐는 것이지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민주의 ‘가면’을 쓰고 민주를 ‘참칭’(심지어 진보를 참칭)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노태우의 국가장에 대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어땠을까요? 노태우의 국가장에 동조했고, 노태우의 빈소에 조문까지 갔습니다.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 못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한 점을 평가”한다고, 구차한 궤변까지 늘어놓았는데요. 그런데도 20대 대선이 끝난 뒤 ‘이빠’ 무리는 이재명에 대한 찬양 일색입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저자는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 프레임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 ‘그러면 국민의힘을 지지하느냐?’라고 반박하는 것이 전형적인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인데요. 문 정부를 비판하는 것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이 어떻게 같은 주장일까요? 윤석열이 극우 수준의 본색을 드러냈다고 해서 그를 비판하는 홍준표가 좌파 민주주의자로 되는가요? 둘 다 우파이며, 둘 중에서 누가 더 우파적인가의 상대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정권 교체에 대한 동의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동일시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적 사고이지요. 정권 교체에 대한 동의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정권 교체에는 동의하지만 국민의힘에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국민의힘을 반대하고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여당이 잘못하면 야당으로 교체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자는 민주당이 선이고 국민의힘은 악이라는 선악의 이분법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또한, 저자는 진영 논리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진영 논리란 자기편은 선이고, 상대편은 악이라고 규정하는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논리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내로남불’이 전형적입니다. 진영 논리에 빠지면 자기반성과 성찰이 없고 묻지 마 상대방 탓하기에 골몰합니다. 잘못을 범해도 반성이 없이 오로지 상대방을 비난하기에 바쁘지요.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에 취한 나머지 민주당이 아무리 싫어도 설마 국민의힘을 찍기야 하겠느냐고 착각합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그래도 국민의힘보다는 낫다고 우월감에 차서 교만한 것이지요.

20대 대선 정국에서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선거 때는 한창 시끄럽다가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쑥 들어가고 조용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도시개발사업이 무엇입니까?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개발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공공의 인허가권을 동원하고 토지를 강제 수용하여 토건 업자와 부동산 개발업자의 막대한 불로소득 수탈을 도와주는 사업입니다. 민간이 아닌 공공이 개발의 주체가 된다고 해도 도시개발사업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고가 분양을 통해 개발이익을 목표로 하는 개발사업은 민간이건 공공이건 똑같이 불로소득을 조장하고 투기를 부추길 뿐이니까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사업은 개발의 주체가 어디이건 단연코 ‘공공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도시개발사업에 대해 민중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대 정부가 독재와 민주를 불문하고 모두 부동산 개발사업을 통해 땅 장사와 집 장사를 해왔다는 사실이지요. 정부는 농지와 유휴지를 강제 수용해 공공택지로 개발하고 민간 건설사와 한통속이 되어 아파트를 고가로 분양하여 천문학적인 규모의 불로소득을 취했습니다. 민중을 수탈하는 데서 관과 민의 구분은 무의미하지요. 도시개발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의 본질은 민중 수탈입니다.

도시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선거 때는 한창 시끄럽다가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한통속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땅 장사와 집 장사로 민중을 수탈하여 떼돈을 벌겠다는 심보에서는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도긴개긴이라는 말이지요.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 함정에 빠지면 도시개발사업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진영 논리에 매몰돼서 자기편을 옹호하고 상대방을 공격하기에 바쁩니다. 왜곡된 프레임에 말려들어 엉뚱한 분풀이를 하는 것이지요. 저자는 거듭 강조합니다.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에서 시급히 탈피하여야 한다는 것, 민주에서 진보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을.

20대 대선의 결과 문재인 정부가 심판받고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 민중의 삶이 나아질까요? 저자는 체제 위기의 모순이 더욱 깊어지고 한층 격화될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현재 나라 안팎으로 긴급한 대책이 필요한 현안들을 포함하여 어려운 문제들이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습니다. 저자는 무엇보다 시급하고 심각한 문제는 부채 문제라고 진단합니다. 과도한 부채의 증가와 거품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끔찍하게 체험한 바 있습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해 11월 15일 「세계 부채 보고서」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가 한국이 104.2%로, 세계 1위이며 증가 속도도 가장 빠르다고 발표했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한 국가가 감내할 수 있는 가계 부채 수준을 GDP 대비 85%로 보는데, 한국은 현재 가계 부채가 100%가 넘습니다. 지금 당장 가계 부채가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는 말이지요.

가계뿐 아니라 경제의 또 다른 주체인 기업 부채도 위험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 부채가 GDP 대비 107.2%였고, 2020년 말 기준으로 111.1%입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지요. 지난해 재무제표 공시기업 2520개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이 39.7%에 달했는데요. 특히 중소기업의 50.9%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고, 한계기업은 정부의 대출 원금 및 이자 유예 조치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저자는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가상승과 인플레이션의 공포는 거품 경제의 후유증이고 부채 경제의 역습인데요. 그런데도 선거에만 신경 쓰는 정치꾼과 자산가의 이익만 편드는 언론은 ‘돈 욱 업’(Don’t look up)을 외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위기를 은폐하는 세력을 강하게 질타하면서, 나아가 ‘대통령을 잘 뽑아서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인물을 바꿔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과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전쟁 국가’ 미국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신랄합니다. 미국은 전 세계를 자신의 작전 구역으로 삼고 있는데요. 북부사령부(북미), 남부사령부(중남미), 인도태평양사령부(동아시아), 유럽사령부(유럽), 중부사령부(중동 및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사령부(아프리카)가 있고, 이들 6대 지역 사령부 외에 핵무기를 관장하는 전략사령부, 우주를 관할하는 우주사령부, 사이버공간에서 작전하는 사이버사령부까지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구라는 행성 전체와 심지어 우주까지 미군의 작전 구역인데요. 하지만 2021년 8월, 미군은 아프간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해 철수하였습니다. 20년간 1조 달러를 퍼부은 최장기 전쟁에서 미국은 변명의 여지 없는 치욕적인 참패를 당한 것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00여 국을 초청해 화상으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는데요. 저자는 전쟁 국가 미국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 자체가 가소로운 일이라고 비판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과 내정간섭을 일삼으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나라인 미국은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지요. 미국은 남의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참견하고 간섭하기 이전에 자기 내부의 민주주의와 인권부터 제대로 지켜야 할 텐데요. 인종차별과 총기 범죄가 만연해 있고, ‘두 개의 미국’으로 쪼개진 미국의 실상을 꼬집은 것이지요.

그런데도 한국의 위정자들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미국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조공을 바쳐가면서 ‘혈맹’을 애걸복걸하고 있습니다. 역대 최고의 방위비 분담금 퍼주기를 하면서 철통같은 혈맹을 외쳐대지요. 하지만 한국은 군사주권이 없는 나라입니다. 군사주권이 없는데, 세계 군사력 순위 6위를 자처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래서 저자는 한미동맹을 ‘동맹’이 아니라 ‘예속’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비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철통같은 동맹’보다 ‘더 깊고 강력한 동맹’을 공약하였는데요. 도대체 얼마나 더 복종하고 수그리려는 것일까요?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낡은 양당체제의 대안으로 등장해야 할 진보정당의 현실에 대해 진단합니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강제 해산한다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21세기에 정부가 법의 이름을 빌려서 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킨 것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지요. 20세기에 터키 헌재는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26개의 정당을 해산시킨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요. 그러나 터키 헌재조차도 정당 해산을 이유로 소속 의원들의 자격을 획일적으로 박탈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21세기에 대한민국 헌재는 원내 제3당이었던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국회에서 축출시켜 버렸어요. 20세기 터키 헌재의 악명 높은 판결보다 더 악독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자는 통합진보당의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통합진보당을 강제 해산시키고 국정농단을 일삼은 죄행으로 탄핵당했던 박근혜는 사면복권이 되었으나, 정작 피해자인 통합진보당의 복권과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지위는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 진보 정치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2014년 연말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심판하던 당시는 박근혜 정부 치하였습니다. 헌재가 박근혜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눈치를 살피면서 판결을 내렸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고, 박근혜의 탄핵 이후 ‘사법 농단 사건’을 통하여 그 진상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달리 사법부가 청와대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이 없지요. 그런데 이석기 전 의원 등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의원직 소송에서 대법원은 지난해 4월 “국회의원직 상실이 인정된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박근혜 치하의 헌재와 똑같은 판결을 확인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저자는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 사법부의 엄연한 현실이며, 대한민국 진보 정치는 아직 시민권을 회복하지 못한 셈이라고 단언합니다.

저자는 지난해 9월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의 구속 사건을 상기합니다. 양 위원장에게 뒤집어씌운 혐의는 불법 집회 개최와 감염병예방법 위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며, 감염병 예방을 명분으로 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금지하는 것 자체가 헌법 위반입니다. 감염병예방법은 헌법 위에 군림하는 초헌법이 아니니까요. 경찰청 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헌법상 보장된 권리인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저자가 새삼 양경수 위원장 구속 사건을 상기한 까닭은 그것이 곧 진보정당에 대한 탄압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1 노총인 민주노총을 불법 범죄집단처럼 치부하면서 사무실을 침탈해 위원장을 강제 연행·구속하는 것이 한국 노동권의 현주소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현재 한국 진보 정치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의 가장 강력한 지지세력이며,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은 곧 진보 정치에 대한 탄압과 다른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건, 객관이 아니라 주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조건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따라서 주체의 대응이 달라질 뿐, 주객이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민주당이 여당이건 국민의힘이 여당이건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민중의 운명은 민중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객관조건을 탓하고 원망해 봐야 아무 소용없으며, 오로지 주체역량을 키우고 주체의 역할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저자의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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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이어서

코로나19로 민생이 시름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자산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져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일자리가 줄어들고 민생이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무리 성실히 땀 흘려 일해 봤자 임금 소득으로는 폭등하는 집값을 따라잡기에 턱도 없다는 암담한 현실이다. ‘벼락거지’로 추락하는 좌절감에다가 근로의욕 자체가 사라지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는가?
자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 대결이 벌어지는 선거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거품을 부풀리기 위한 공약이 난무하는 선거는 미래 지향적이 아니라 과거 퇴행적이다. 정치는 프레임 전쟁이다. 4·7 보궐선거는 개발과 성장의 프레임에 갇힌 선거다. 누가 서울시장에 당선돼도 재개발·재건축 바람으로 집값이 들썩일 전망이다. 4·7 보궐선거 이후 민생이 걱정이다. _4·7 보궐선거 이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것이 조세 공평주의 원칙이다. 집값이 폭등해 그에 맞춰 종부세를 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불로소득의 환수 차원에서 종부세를 부과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이다. 집값이 폭등해 집 부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수억에서 수백억의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는 것을 고스란히 그들이 사유화하도록 보장해 주고, 거기에다 세금 감세의 특혜까지 안겨준다면, 그야말로 부자 천국 아닌가? _부자 감세와 민주당의 정체

정부·여당은 잡으라는 집값은 안 잡고 되레 종부세를 잡겠다고 한다. 그들은 지난해 4·15 총선 때 ‘개혁을 위해 힘 있는 여당이 필요하다’고 표를 달라고 애원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독 입법권의 압도적 권력을 갖게 된 ‘힘 있는 여당’ 민주당이 한다는 짓이 부자 감세 정책이다. 이런 정부·여당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묻고 싶다. 걱정이란 약자를 두고 하는 것이지 강자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도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밀릴까 봐 걱정이라고? 세상 쓸데없는 걱정이다. 지난달 24일 국민의힘이 종부세 부과 기준을 현행 9억 원(공시가격)에서 12억 원으로 올리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공시가격 12억 원을 비율로 따지면 상위 1.9%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종부세만 놓고 보면 민주당(2%)과 국민의힘의 차이는 0.1%포인트이다. 도긴개긴이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자. _세상 쓸데없는 걱정

“무기 수출 세계 6위”라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무기 수출의 전쟁 장사가 무슨 자랑이라고 그걸 치적처럼 내세우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야말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칭 인권과 평화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 부끄럽다. _무기 수출 세계 6위

문재인 정부가 노태우의 국가장을 집행한 것은 ‘민주’ 정부의 가면이 벗겨지고 그 민낯의 본색이 드러난 일대 사건이다. 노태우는 군사반란을 일으킨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던 자다. 군사반란과 민주주의가 양립할 수 있는가. 군사반란의 주모자를 국가장으로 예우하는 민주주의가 있을 수 있는가.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집단학살한 살인마를 예우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란 말인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의 가면을 쓰고 민주를 참칭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참칭’이란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른다는 뜻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노태우의 국가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 후보는 노태우의 빈소를 조문하면서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 못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한 점을 평가”한다는 구차한 조문의 변을 늘어놓았다. _‘민주’의 가면을 벗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7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브리핑에 없는 대통령 이야기-40회’를 통해, 청와대가 “평화를 뒷받침하는 강한 국방을 이루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국방력 강화 노력은 실질적 전력 증강을 의미하는 ‘방위력 개선비’ 증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기재부가 발표한 방위력 개선비 증가율은 이명박 정부 5.8%, 박근혜 정부 4.6%, 문재인 정부 7.4%”라며 “보수 정부보다 진보 정부가 높고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들보다 압도적으로 높다”고 밝혔다. _‘힘에 의한 평화’라는 낡은 프레임

나는 이전에 발표한 칼럼들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숱하게 지적하고 비판했고, 어떤 조치가 필요하고 대안의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입이 아플 정도로 반복하여 말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LH 사태가 터지고 민심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엄단하겠다고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다. 물론 투기는 단속해야 한다. 더구나 LH 직원들의 땅 투기는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투기의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정부다. 정부가 투기판을 벌여놓고 투기꾼을 단속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닌가? 도박장을 개장해놓고 도박꾼을 단속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_투기판을 벌여놓고 투기를 단속한다고?

4년 전 오늘을 돌아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게 나라냐”며 박근혜 탄핵의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기대에 대한 화답이었다. 과연 나라다운 나라로 되었는가?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이 ‘영끌’로 ‘빚투’하며,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현실, 이게 과연 나라다운 나라인가? _문재인 정부 4년, 나라다운 나라인가?

감당하지 못할 과도한 부채 차입은 파산의 근원이다. 원리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채의 늪에 빠지면 파산을 피할 수 없다. 과도한 부채경영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 헝다 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대우 그룹을 연상시킨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주체(가계, 기업, 정부)의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비율은 이미 외환위기 당시의 수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거품 붕괴와 경제 공황 사태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_부채의 위기 경보 ‘헝다’

정부가 도시개발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공공의 인허가권을 동원하고 토지를 강제 수용하여 부동산 개발업자의 막대한 불로소득 수탈을 돕는 것은 반민중적이다. 정부가 토건족의 민중 수탈의 공범 노릇이나 해서야 되겠는가. 민간이 아닌 공공이 개발 주체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고가 분양을 통해 개발이익을 목표로 하는 개발사업은 민간이건 공공이건 똑같이 불로소득을 조장하고 투기를 부추길 뿐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사업은 개발의 주체가 어디이건 결코 공공성이 없다.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지점은, 역대 정부가 독재와 민주를 불문하고 모두 ‘공공’의 이름으로 부동산 개발사업을 통해 땅 장사와 집 장사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농지와 유휴지를 강제 수용해 공공택지로 개발하고 민간 건설사와 한통속이 되어 아파트를 짓고 팔아 천문학적인 규모의 불로소득을 취해왔다. 민중을 수탈하는 데서 관과 민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윤추구의 시장으로 전락한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와 투기의 구분은 어불성설이다.
불로소득이란 일하는 사람 어느 누군가의 노동소득을 착취한 산물이다. 도시개발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의 본질은 민중 수탈이다. 물론 개발사업의 추진과정에서 부정부패와 불법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밝혀내서 합당한 처벌을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민중 수탈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과정의 공정’만을 따지는 것은 비본질적이다. 민영개발인가 공영개발인가를 따지는 것도 부차적이다. _개발이란 명목의 민중 수탈

종부세는 집값이 상위 2% 안에 드는 주택 소유자에게만 부과된다. 절대다수 국민은 종부세와 무관하다. 이억원 기재부 제1차관의 말마따나 “분명한 것은 전체 국민들 중 약 98%의 국민들께는 고지서가 발송되지 않는다.” 98%에 이르는 절대다수 국민들은 종부세 고지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보는 것이 평생소원이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 부동산 부자의 대한민국에서 98%의 서민은 비국민인가. _2%의 대한민국, 98%의 비국민

‘회색 코뿔소’의 경고다. 회색 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로 인해 사회가 인지하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뜻하는 말이다. 코뿔소는 덩치가 커서 달려오면 땅이 흔들릴 정도라 코뿔소가 달려온다는 걸 쉽게 알 수 있고 코뿔소와 부딪히면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예상할 수 있고 사고가 터지면 파급력도 크지만 무시하다가 통제 불능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사태, 회색 코뿔소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쳐다보지 말라고 한다. 이 영화는 6개월 뒤 거대 혜성과 충돌해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과학자들이 다급하고 간절하게 경고하지만, 선거에만 신경 쓰는 정치와 대중의 엿보기 심리를 자극하는 언론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자연스레 40일도 안 남은 우리나라의 20대 대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회색 코뿔소를 외면한 채 지지자에게 애써 보지 말라는 ‘쇼’를 한다고 현실이 달라지는가. _회색 코뿔소와 돈 룩 업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은 거품 경제의 후유증이고 부채 경제의 역습이다. 물가 상승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의 살림살이가 더 나빠지고 있다. 그런데 대선을 한 달 앞둔 정치권은 완전히 딴 세상이다. 돈 풀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14조 원 규모로 지난달 국회에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35조 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50조 원으로 추가경정예산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돈을 풀면 물가가 더 오른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고, 부채가 늘면 결국 거품 경제의 후폭풍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필연의 법칙이다. 돈 풀기 경쟁의 끔찍한 후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_물가 상승과 부채 경제의 역습

우리나라는 얼마나 다를까? 한국에는 이주노동자·결혼이주민·동포·유학생 등 200만명이 넘는 이주민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 집단인 중국인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19 감염이 국내에서 확산되던 초기에 중국 공포증의 조장·유포 양상이 심각했었다. ‘짱깨’, ‘중국인은 바이러스’ 등 자극적인 중국인 혐오 표현이 넘쳤고, ‘중국인 출입 금지’를 내건 가게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중국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구태 정치인과 못된 종교인들은 ‘중국인 입국 금지’를 외치면서 증오를 조장하기 바빴다. _인종차별의 부끄러운 자화상

미국 억만장자들의 자산이 1990년 2400억 달러에서 2021년 4조5600억 달러로 31년 동안 19배나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이 기간에 증가한 자산 4조3000억 달러 중에서 1/3 이상이 최근 13개월의 코로나19 사태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13개월 동안 30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코로나19에 걸렸고 56만 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약 77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_코로나19와 미국 억만장자들의 자산 폭증

지난 미국 대선 결과에서 보았듯이, 미국 사회는 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로 격렬하게 대립해 유혈 충돌까지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월 6일 경찰 저지선을 뚫고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최종 승인하는 절차를 진행하던 상·하원 의원들은 긴급 대피했고 일부는 회의장 안에 갇히기도 했다. 이 사태로 경찰 2명을 포함해 5명이 숨졌고, 현장에 있었던 경찰 2명이 나중에 목숨을 끊었다. 경찰 부상자도 150명에 달했다. 두 진영으로 극명하게 갈라져 폭력 살인 사태까지 발발함으로써 두 개의 미국이라는 실상이 여지없이 드러났던 것이다. _두 개의 미국

미국은 전쟁 국가이다. 미국은 세계를 제패하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에 매달려왔다. 미국은 전 세계를 자신의 작전 구역으로 삼고 있다. 북부사령부(북미), 남부사령부(중남미), 인도태평양사령부(동아시아), 유럽사령부(유럽), 중부사령부(중동 및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사령부(아프리카)가 있다. 이들 6대 지역 사령부 외에 핵무기를 관장하는 전략사령부, 우주를 관할하는 우주사령부, 사이버공간에서 작전하는 사이버사령부까지 있다. 그야말로 지구라는 행성 전체와 심지어 우주까지 미군의 작전 구역이다.
미국은 80개 국가 약 800개의 해외 미군기지에 15만 명의 미군 병사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을 ‘천조국’(1000조원의 국방비를 쓰는 나라)이라고 부른다. ‘지구 방위군’ 역할을 맡은 미국을 비꼬는 말이다. 여기에 핵무기 통계는 잡히지도 않는다. 핵무기는 국방부 관할이 아니라 에너지부 관할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나라는 없었다. _미국의 아프간 전쟁 참패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여 20년 동안 전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데 대하여 아프간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침략전쟁은 범죄이다. 국제 사회는 미국의 아프간전 범죄를 결코 용인 묵과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게 되는 법이다. _아프간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

민주주의의 기본은 인권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다. 인종의 차이를 이유로 차별이 횡행한다는 게 과연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가. 특정 인종에 대해 적대감을 퍼뜨리고 혐오감을 부추기면서 낙인과 배제를 조장하는 것은 반인륜적인 혐오범죄이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1969.1.4. 발효된 유엔 협약)은 인종주의 전파·인종적 증오 고취·특정 인종에 대한 폭력 행동 선동을 금지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협약을 가장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전쟁 국가 미국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도 가소로운 일이다. 2021년 8월,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끝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해 20년 넘게 전쟁을 벌인 미국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20년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국토가 폐허로 변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전쟁지역에서만 약 24만1천 명이 사망했다. 살해당한 시민(비무장 민간인)도 7만8300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 민간인 희생자 중에 여자와 어린이가 43%였다. 202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약 354만 7000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실향민이 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난민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서 이처럼 참혹하고 끔찍한 참상을 벌인 나라 미국이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
미국의 공영방송 PBS가 올해 7월에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도 미국인의 81%가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에 대한 젊은이들의 만족도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55%는 민주주의에 불만족하고 신뢰를 잃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은 주제를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와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과 내정간섭을 일삼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파괴국가인 미국은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미국은 주제넘게 남의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참견하고 간섭하기 이전에 자기 내부의 민주주의와 인권부터 제대로 지켜야 할 것이다. _미국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지난 14일 소성리 사드 기지에 공사 자재가 반입되면서 경찰과 주민 간에 충돌이 벌어졌다. 지난달 28일 2000여 명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폭력적인 강제 진압으로 주민들을 끌어내고 이동형 발전기와 공사 자재를 반입한 지 2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참이다. 정부는 이번 주부터 기지 안정화, 육로 수송로 확보를 위해 경찰을 수시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참외 수확으로 한창 정신없이 바쁜 철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드철회평화회의’ 소속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한미 간 만남이 있을 때마다 소성리를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제물로 삼아 왔다”고 비판한다. 이번에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상전의 신임을 얻기 위한 충성 맹세인가?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 재벌들이 미국 현지 투자 계획을 발표하거나 검토 중이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4대 그룹이 미국 투자를 결정했거나 검토 중인 액수는 무려 40조 원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19조 원)를 투자해 텍사스주 오스틴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증설을 검토 중이다. 현대자동차는 2025년까지 미국에 전기차 생산설비와 자율주행 등에 총 74억 달러(8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3조 원을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1·2공장을 건설·가동 중인데, 향후 3조 원 규모의 3·4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GM과 미국 오하이오주에 총 2조7000억 원(LG 투자금 1조 원)의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2025년까지 미국 내 2곳에 5조 원 이상의 공장 신설을 검토 중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현지 투자 요구에 대해 한국의 재벌들이 화답하는 모양새다. 현대판 조공 상납의 행렬인가? _충성 맹세와 조공 상납

‘철통같은 한미동맹’을 재확인한 21일 한미 공동성명의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한미관계의 민낯이 드러난다. 동맹은 두 나라의 국력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최소한 각 나라의 자주성이 있는 주권 국가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하지만 한미관계는 일방적 관계이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작권이 없다. 한미 연합사령부는 미국군이 사령관을, 한국군이 부사령관을 각각 맡고 있다. 군대 조직에서 사령관과 부사령관이 ‘동맹’ 관계일 수 있는가? 아무리 ‘혈맹’이라고 미화하고 치장을 해봐야 명령하고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관계가 ‘동맹’으로 바뀔 순 없다. 한미동맹은 ‘동맹’이 아니라 ‘예속’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철통같은 동맹을 재확인한 한미 정상회담을 “최고의 회담”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미상호방위조약」,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명기한 한미 공동성명을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기대한 것 이상”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게 맞는가? _철통같은 한미동맹의 재확인

심지어 박정희 독재정부 치하에서도 작전지휘권 이양은 위헌 무효이므로 폐기하고 작전지휘권을 환수해야 한다고 바른 소리를 내는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그때로부터 55년이 지나 지금은 21대 국회이며 헌정사상 최초로 ‘민주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전작권 환수라는 71년 밀린 숙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그리고 진보를 자처하는 의원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_71년 밀린 숙제, 전작권 환수

지금은 대화와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정전체제가 해체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법칙이다. 비록 법칙이 관철되는 과정에서 곡절이 있을 수 있고 진행 속도에서 기대에 어긋날 순 있겠으나, 법칙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다. 거듭 강조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길은 험난한 노정이지만,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다. _정전체제 해체의 법칙

법칙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포린 어페어스〉에 ‘북한과의 일괄 타결’이 실린 것은 미국 내부에서 대북 전략의 전환과 새로운 정책 수립을 위한 공론이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전체제 해체와 평화체제 확립은 막을 수 없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 타개를 위해 나서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점점 막다른 궁지로 내몰리는 수밖에 없다. 거대한 전환은 현재 진행형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정학에서 거대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이 중대한 사변적 변화에 대하여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가령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많으나 이 중대 현안을 대선 의제로 삼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한반도 남쪽의 우리만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져 낙오하는 게 아닐까. _대북 전략, 적대에서 동맹으로?

한국은 지난 30년간 한·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의해 원칙적으로 미국이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경비를 특별협정이라는 조치에 따라 부당하게 부담해왔다. 한국이 주한미군 전체 주둔 비용의 70% 이상을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2018년 말 기준 방위비 분담금의 미집행액이 현물과 현금을 합쳐 1조3천억 원에 달하고, 미국은 미집행 지원금을 불법 전용하고 이자수익을 챙기고 있다. 2019년 3월 국내 은행에 예치됐던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 현금 약 2800억 원이 미국 재무부 계좌로 송금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액을 환수해야 맞지, 그걸 그냥 놔둔 채 역대급으로 증액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여론을 봐도 명백하다. 통일연구원이 세 차례(2019.9, 2020.6, 2020.11)에 걸쳐 진행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방위비 분담금을 현 수준으로 유지(69.7%)하거나 감액해야 한다(25.3%)는 응답이 95%에 달한다. 극소수 5%를 제외한 사실상 전 국민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백성들의 뜻을 철저히 외면하고 역대 최고의 방위비 분담금 퍼주기를 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은 재정이 부족하니 아껴야 한다고 역설하던 정부가 정작 주한미군에게 주는 지원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낌없이 퍼주고 있다. 이 나라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_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윤석열 후보는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견고한 한미동맹을 구축하는 것이 곧 한국 외교의 중심축을 튼튼히 하는 것”이라면서 “더 깊고 강력한 동맹”을 역설했다. 윤 후보는 “한국은 미국과 포괄적 전략동맹을 구축해야 하며, 양국의 협력 관계는 21세기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도록 진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후보가 “더 깊고 강력한 한미동맹”이라고 하면서 내세운 정책들(개인정보 보호, 공급망, 공중 보건 협력, 첨단반도체, 배터리, 사이버 장비, 우주여행, 원자력, 제약, 녹색기술 분야 협력)은 지난해 5·21 공동성명에 포함된 내용이다.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미 외교 안보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그가 제시하고 있는 정책들을 살펴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내용이 없이 그저 ‘한미동맹의 강화’만을 동어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한미동맹을 ‘혈맹’이라고 미화하여도 명령하고 복종하는 상명하복의 관계가 달라지진 않는다. ‘철통같은 동맹’보다 ‘더 깊고 강력한 동맹’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더 복종하고 수그려야 한단 말인가. _‘철통같은 동맹’보다 ‘더 깊고 강력한 동맹’

대법원 특별3부는 판결문에서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요지를 길게 인용하고 있다. 21세기에 정부가 법의 이름을 빌려서 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킨 것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지난 세기에 터키 헌법재판소는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26개의 정당을 해산시킨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터키 헌재조차도 정당 해산을 이유로 소속 의원들의 자격을 획일적으로 박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21세기에 대한민국 헌재는 원내 제3당이었던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국회에서 축출시켜 버렸다. 20세기 터키 헌재의 악명 높은 판결보다 못한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긴 것이다.
2014년 12월 19일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심판하던 당시는 박근혜 정부 치하였다. 헌재가 박근혜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눈치를 살피면서 판결을 내렸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고, 박근혜의 탄핵 이후 ‘사법 농단 사건’을 통하여 그 진상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달리 사법부가 청와대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7년 전 박근혜 치하의 헌재와 똑같은 판결을 내렸다. 헌재 판결보다도 더욱 기가 막힐 일이다. _정의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주목할 점은, 한국지엠의 통상임금 소송 과정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구조가 명확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지엠 자본-청와대-사법부로 이어진 권력 구조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에서 보았듯이 사법부는 한낱 청와대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경제 권력(지엠 자본)과 정치 권력(청와대)의 관계는 경제 권력이 우위를 차지하는 갑과 을의 관계이다. 경제 권력을 장악하고 대대로 세습까지 하는 자본에 비하면 청와대의 대통령은 겨우 5년 단임 계약직으로 쓰다가 버려지는 신세일 따름이다.
‘청와대 정부’ 또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를 정치 권력 우위의 구조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장기 독재정권의 경험에서 비롯된 착시효과일 뿐이다. 1987년 이후 들어선 단임제 정부가 피할 수 없었던 임기 후반기의 레임덕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임기를 마친 뒤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가 어떠했는가를 보면 정치 권력의 위상이 명확하지 않은가. 20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전직 대통령들과 다를 게 없다. _신의칙 판결과 권력 구조

투기 열풍의 끝이 좋았던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영원히 오르기만 하는 투자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코인에 빠진 청년들에게 ‘한탕주의에 빠졌다’고 비난하거나, ‘노동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훈계할 일이 아니다. ‘평등, 공정, 정의’의 헛소리가 2030 청년세대의 분노를 촉발했듯이, 한낱 기득권 꼰대들의 주제넘은 충고로 치부될 터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수저 바꾸기’가 불가능한 사회구조를 놔둔 채 그들만 탓하는 것은 청년들의 화를 부채질할 뿐이다. 청년들에게 좌절과 포기를 강요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변혁하는 것이 먼저다. _암호화폐 열풍, ‘달까지 가자’

이준석 현상을 불러온 일등 공신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애당초 기대와 호의가 없었더라면 실망과 분노도 없었을 텐데, 문재인 정부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비롯하여 연이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은 청년들의 격한 반발과 거센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은 집값 폭등과 ‘이생집망’,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실종, 차별과 일자리 불안의 가중, 현재의 불안과 미래의 암울함에 대하여 일말의 반성과 책임감도 보여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재벌의 중대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우고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한 약속을 깨고 이재용에 대한 사면 의사를 밝히자, 민주당은 ‘가석방도 가능하다’며 맞장구를 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청년의 문제는 청년들이 스스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기득권 거대 정당에 기대서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희망 고문’일 뿐이다. 청년 의제가 선거 때 반짝 장식품으로 활용돼 소모되고 버려지는 현상이 반복돼선 안 된다. 청년의 세력화는 청년 대중운동의 발전 속에서만 이룰 수 있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 대중운동을 활발하게 일으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정치적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 진정한 청년 정치의 실현이다. 자주적으로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니면 진정한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투쟁 없이 쟁취 없다! _이준석 현상에 대하여

능력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봉건사회는 태어날 때 신분이 정해져 인생이 결정되는 신분제 사회이다. 자본주의는 봉건사회의 신분제를 폐지하고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등장했다. 신분제가 폐지되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천명되었으나,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 양극화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능력주의이다.
능력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쓴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 사회의 끝은 사회 붕괴”라고 경고하였다. 능력주의의 나라 미국에서도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비등해지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노릇인지 대한민국에서는 능력주의의 화신이 제1야당의 대표로 당선되자, 그걸 ‘보수의 혁신’이요 ‘정치의 세대교체’라면서 환호하고 있다. 덩달아서 능력주의를 찬양하는 얼빠진 지식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제정신들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_능력주의에 대한 찬양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는 불평등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 세습되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다. 세습되는 불평등이 고착된 현실에서는 공정의 원칙이 지켜진다고 해도 불평등이 해결될 수 없다. 태어나서부터 시작의 출발선이 다르고 처음부터 경쟁에 참여할 기회도 봉쇄된 상황에서 형식적 공정만 밀어붙이면 결국 불평등이 더 심각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평등 없는 공정의 함정이다. _평등 없는 공정의 함정

민주노총의 7·3 노동자대회는 ‘중대재해 근절!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저지! 최저임금 인상! 노동법 전면 개정!’ 등을 외친 집회였다. 코로나19 위기의 장기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의 요구를 사회에 알리고 정부에게 노정 대화를 촉구하였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했고 무슨 폭력이라도 일으켰는가. 그런데, 평화적인 생존권 요구 집회를 개최했다고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헌법을 짓밟으면 독재 통치다. 양경수 위원장의 구속은 문재인 정부의 독재적 본성이 드러난 사건이다. _양경수 위원장의 구속과 문재인 정부의 성격

강 전 장관이 특성화고 학생의 현장실습이 뭔지나 알며, 한 해 2천 명 넘게 죽어가는 노동 현장에 평생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을까. 강 전 장관을 IL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시키는 걸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참 후안무치하다는 걸 새삼 절감한다. 지난달 2일 새벽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해 양경수 위원장을 체포·구속한 이 정부가 ‘노동 선진국’ 운운하다니, 철면피하기 짝이 없다. 단지 후안무치와 철면피를 넘어 우리 노동자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강 전 장관은 입후보를 당장 철회하라. _강경화 전 장관의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출마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민중의 삶이 나아질까? 되레 더 나빠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대통령을 잘 뽑아서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생각 자체를 아예 버려야 한다.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인물을 바꿔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과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_새 정부가 들어서면 민중의 삶이 나아질까?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 약 2500만 명 가운데 2000만 명이 노동자이다. 노동 의제의 실종은 곧 인권의 실종이다. 노동 의제가 실종된 20대 대선이지만 노동자에게 강 건너 불구경일 순 없다. 더 나쁜 놈 막으려고 덜 나쁜 놈 찍었다가 손가락에 장을 지지고 싶다는 후회를 더 이상 반복해선 안 된다. ‘개악’을 찍고서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의 모순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악이 아닌 선에 투표해야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_노동 의제가 실종된 대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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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 서문
객관이 아니라 주체가 중요합니다

■ 20대 대선과 정치의 퇴행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을 능가하는
윤석열 후보와 김종인의 복귀, 20대 대선의 퇴행
진영논리와 정치의 퇴행
인재 영입 쇼와 위기 불감증
‘멸공 챌린지’와 55공약
포퓰리즘 경쟁과 기준금리 인상
세계 불평등 보고서와 부유세 논의
문제는 대선 이후이다
대선 이후 나타난 미국적인 현상

■ 민주의 가면, 진보의 참칭
가덕도특별법, 과거 정부와 뭐가 다른가?
정치가와 정치꾼
민주당 정부가 진보라는 착각
4·7 보궐선거 이후
선거 끝난 다음이 중요하다
부자 감세와 민주당의 정체
삼성은 사면도 세습인가?
세상 쓸데없는 걱정
무기 수출 세계 6위
‘민주’의 가면을 벗다
‘힘에 의한 평화’라는 낡은 프레임

■ 회색 코뿔소와 ‘돈 룩 업’
투기판을 벌여놓고 투기를 단속한다고?
문재인 정부 4년, 나라다운 나라인가?
때늦고 미흡한 기준금리 인상
부채의 위기 경보 ‘헝다’
개발이란 명목의 민중 수탈
2%의 대한민국, 98%의 비국민
회색 코뿔소와 돈 룩 업
물가 상승과 부채 경제의 역습

■ 미국, 인권과 민주주의의 불모지
인종차별의 부끄러운 자화상
코로나19와 미국 억만장자들의 자산 폭증
두 개의 미국
미국의 아프간 전쟁 참패
아프간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
미국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 상명하복의 철통같은 한미동맹
충성 맹세와 조공 상납
철통같은 한미동맹의 재확인
71년 밀린 숙제, 전작권 환수
정전체제 해체의 법칙
대북 전략, 적대에서 동맹으로?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철통같은 동맹’보다 ‘더 깊고 강력한 동맹’

■ 사회구조의 변혁
정의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신의칙 판결과 권력 구조
암호화폐 열풍, ‘달까지 가자’
이준석 현상에 대하여
능력주의에 대한 찬양
평등 없는 공정의 함정
양경수 위원장의 구속과 문재인 정부의 성격
강경화 전 장관의 국제노동기구 사무총장 출마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민중의 삶이 나아질까?
노동 의제가 실종된 대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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